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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8-02-09 19:30:58, Hit : 3444, Vote :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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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삼정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한겨레> 조현 기자의 休心井

[글고유주소] http://well.hani.co.kr/board/jh_san/224033

삼정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수첩 볼펜 카메라 다 버리자 비로소 ‘죽비’ 선물
죽 한그릇 자비는 덤…“외로움? 좋다,이렇게 좋다”


부끄러웠습니다. 20여년의 고독 속에서 피어난 내면의 빛을 훔치려던 심보가 죄스럽고, 그것을 모조리 기사와 사진으로 담아 내려던 욕심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지난 몇 해 동안 이름도 자취도 없이 살다 열반해버린 근현대 선지식들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런 은둔의 선사들을 찾아 산사를 헤매고 마침내 깊은 산사와 암자의 선방과 토굴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숨은 은자’를 발견했을 때의 그 감회란 산삼을 캐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전설이나 신화 속에만 있을 법한 치열하고 자유롭고 자비로웠던 선사들이 불과 20~30년 전에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했다면, 왜 지금이라고 없을 것인가. 다만 우리가 세속의 조미료 향과 중독성 미각에 취해서 무형 무색 무취로 너무도 은은한 그들의 향기를 놓쳐 버렸을뿐인 것은 아닐까. 그 은자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일 수도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동영상까지 준비해 형상과 그림자, 욕심껏 담으려했던 부끄러움

그래서 마침내 찾아 나선 이가 상무주암의 현기 스님이었습니다. 그는 70년대까지 여러 선방에서 이름깨나 떨치던 선승이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년. 그는 지리산 줄기인 삼정산 1100고지 상무주암에 은둔해 홀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초행길엔 세상에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를 동영상에까지 담을 동행들도 함께 했습니다. 그 때 마주한 현기 스님의 눈빛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보되 보지 않는 눈, 형상이 아니라 그림자와 본지를 함께 꿰뚫는 듯이 투명한 눈, 요람처럼 전 존재를 감싸 안는 그런 눈빛을 마주한 순간 오직 형상과 그림자를 욕심껏 담으려던 그 마음이 부끄러워진 것입니다.


  
수첩·볼펜 하나 없이 다시 암자로…

하여 이번엔 일행들과 함께했던 초행길과는 달랐습니다. 단신으로 올랐습니다. 지리산 삼정산 약수터 옆 길가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배낭을 들쳐 멨습니다. 배낭엔 초행길의 ‘무례’에 대한 사죄를 담아 스님께 올릴 공양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배낭 안엔 수첩이나 볼펜, 카메라는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기자로선 직무 유기일지 모르지요. 비록 신문사에 아예 휴가를 얻어 가는 길이긴 하지만 본분을 망각했다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인생의 본분사일까요.

걱정도 털고 불안도 털고…오직 디딤발 한발한발에만 집중

가파른 산길을 홀로 한참 오르는데 한 중년 남자가 짐을 실은 지게를 진 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상무주암에 가는 길이라면서 “어떻게 우리 스님을 알았느냐”며 신기한 듯 쳐다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경남 함안에 사는 이 거사는 5년 전 간암으로 3년 이상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애초 이 산 건너편의 작은 암자에 자주 다녔는데, 그곳에서 먼 산정 아래 새어나오는 작은 불빛을 못내 동경하던 중 마침내 상무주암에 와 현기 스님을 만난 뒤 그를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가 진 지게를 져보니 배낭보다 두 배는 더 무거워 100m도 오르기 전에 휘청댔습니다. 다시 지게를 뺏어 짊어진 암환자가 한 발 한 발 나아갔습니다. 조고각하(照顧脚下·발밑을 살피라)였습니다.  5년 전 말기 암 선고를 받았을 때, 걱정과 불안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면 이미 2년도 더 전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그는 “120근의 짐을 진 자처럼 걸으라”는 스승의 말 그대로 오직 다음에 디딜 발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앞발에만.


▲ 지리산 상무주암  

드디어 상무주암에 도착했습니다. 외딴 암자의 사립문엔 작대기 두개가 빚장쳐져 있었습니다. 작대기를 치우고 마당에 들어서니 평상에 앉은 현기 스님이 지리산하의 운해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지리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 터였습니다. 이곳에서 견성해 한국 불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보조 지눌은 상무주암을 ‘천하제일갑지’(天下第一甲地)라고 했습니다. 천하 최고의 터라는 것입니다.

“한 번 왔으면 마음길이 끊어져야지!!!” 단박에 내리쳐

초행길은 기자로서 왔지만, 이제는 공부인으로 왔다고 느꼈던 것일까요. 객을 대하는 스님의 눈빛이 전과는 달랐습니다. 평상에서 합창한 채 망부석처럼 앉아있던 스님이 객의  3배가 끝나자마자 매섭게 죽비를 내려쳤습니다.
“한 번 왔으면 마음길이 끊어져야지!!!”
번뇌망상을 끌고다니지 말고, 단박에 ‘마음의 방황’을 끝내라는 호령이었습니다. 평상을 내려온 스님이 바구니를 들고 암자 앞 비탈진 터에 있는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의 손이 어느 머슴 손보다 거친 것은 이 넓은 터를 개간해 먹거리를 몸소 가꾼 때문이었을것입니다.
“스님이 오시기 전에도 이 넓은 텃밭이 있었습니까?”
“내가 오기 전엔 지리산도 없었어!”
평범한 질문에 전광석화 같은 선답이 터져나왔습니다. 분별을 잘라내는 그의 칼날 아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마음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문에 전광석화 같은 선답 뒤 바지춤 내리고 천연스레 ‘쏴~’

조작이 없는 천연이 불심(佛心)이라 했던가요. 죽비를 내려치던 모습도 한순간일 뿐 다음 순간 스님은 바지춤을 내리더니 그대로 서서 채소 밭에 오줌을 쌌습니다. 그의 바지춤 아래서 계곡수같은 시원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텃밭에서 따온 양배추를 칼로 다듬던 스님이 “지리산과 천하가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천하는 하나인데 천하사람의 마음에 비친 것은 모두 다릅니다. 그렇다면 그의 질문은 “네 눈에 비친 그것이 ‘진실’하냐”는 물음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라 했던가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세상 또한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내 마음이 빚어낸 것’이란 의미입니다. 상무주암의 사자였던 보조 지눌의 돈오점수(頓悟漸修·깨달은 뒤에 점차 닦아나감)에 대한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頓悟頓修·단박에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음) 공세로 빚어진 ‘돈-점’ 논쟁조차 그에겐 ‘마음의 장난’일 뿐이었습니다.

‘돈-점’ 논쟁조차 그에겐 ‘마음의 장난’일뿐


▲ 포행하는 현기 스님  

“바른 법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옳다고 주장하는 그 사상이 옳은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내가 옳아야한다. 그러면 일제 사(邪·틀린 것·사이비)조차도 정(正·바른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바르면 일체가 바르고, 내가 그르면 일체가 그르게되는 것이다.”
일체가 심법(心法·마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달로 알고, ‘진실’로 알며 고집하는 세인의 분별이 어찌 하루 아침에 천지개벽하듯 바뀔 것입니까. 뱀이 허물을 벗을 때도, 나비가 누에고치에서 나올 때도 그만한 아픔이 있었을 터입니다. 상무주암에 오르기 전 꿈 속의 삶이 너무나 복잡다단해서였을까, 아니면 청정한 암자의 음식이 오히려 오염된 세인에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일까요. 암자에 머문 3일 동안 설사가 끊이지 않아 찬물도 마시지 않고 설사를 멈출 일을 고심하는데, 스님은 오히려 딴소리었습니다.
“찬물도 계속 마셔서, 몽땅 쏟아버려. 버릴 것은 버려야지!”
  
스님은 매일 새벽 2시40분이면 어김 없이 새벽 예불을 드리며, 낮엔 끊임 없이 일하고, 밤에도 거의 잠자리에 눕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에누리라곤 없어 보이는 선승에게도 경책의 죽비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밥상엔 설사 앓는 객을 위해 노승이 직접 끓인 죽이 향기인 듯 사랑인 듯이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죽으로 거친 속을 달래고 스님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며 마당을 100여바퀴 포행 하니 어둠이 짙게 깔렸습니다.
토방의 나무 의자에 좌정한 스님 옆에 앉았으나 시야엔 어떤 인간의 흔적도 불빛도 없었습니다. 오직 지리산 능선과 하늘과 별과 고요와 고독 뿐이었습니다. 얼마나 됐을까요. 버나드 쇼는 ‘고독은 방문하기엔 좋은 장소이나 머물러 있기엔 쓸쓸한 장소’라고 했던가요.

장난기 어린 표정도 잠시 무심한 별빛처럼 속삭여

“스님, 저는 인간들 좀 안보고 싶어서 5년 전 신문사를 1년 쉬고 인도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 히말라야의 선경이 펼쳐져 있는데, 그 선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토록 보기 싫던 인간들’만이 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그립고 외로워 밤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잘 갔구먼!”하고 빙그레 미소 짓는 스님에게 당돌한 질문을 마저 했습니다.
“스님은 이 긴긴밤 외롭지 않으십니까?”
잠시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던 스님이 “그러게. 외로워서 어쩌지”하며 웃었습니다. 그러나 70이 넘도록 상좌(제자) 한명 안두고 홀로 살아온 그의 ‘절대 고독’을 어찌 감출 수 있을 것입니까. 그가 수만년 동안 무심히 빛을 발한 저 별처럼 속삭였습니다.
“사람들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기를 쓰고 돈을 벌려는 것도, 권력과 지위를 얻으려는 것도 그것이 없으면 고독해질까봐 두렵기 때문이야. 그런데 나는 이상하지. 이게 좋으니. 이게 이렇게 좋으니.”


지리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영상미디어팀 은지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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