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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5-08-07 23:30:41, Hit : 9512, Vote : 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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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여인들 (2) 서시
이런 시가 전해내려 옵니다.

沈魚落雁(침어락안)  물고기는 물 속으로 가라앉고, 기러기는 땅 밑으로 떨어지며,
閉月羞花(폐월수화)  달은 구름 뒤로 얼굴을 가리고, 꽃은 스스로 부끄러워 하노라.

물고기와 기러기와 달과 꽃, 얘네들이 왜 이럴까요? 왜 가만히 있다가 물 밑으로 들어가고, 날아가던 기러기마저 떨어지고, 달과 꽃도 부끄러워 얼굴을 숨기는 것일까요?
중국의 4대 미녀인 서시(西施), 왕소군, 초선, 양귀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沈魚(침어)는 서시를, 落雁(낙안)은 왕소군을, 閉月(폐화)는 초선, 羞花(수화)는 양귀비를 뜻합니다.

서시는 춘추전국시기에 월(越)나라의 저라산(苧蘿山) 기슭(지금의 절강 제기시) 의 한 농촌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이광(夷光)입니다.
어릴 때부터 천성이 곱고 용모가 아름다워 항상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합니다. 하루는 서시가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맑은 강물에 비쳤습니다. 이때 물고기가 물에 비친 아름다운 서시의 모습에 도취되어 헤엄치는 것도 잊어 버리고 구경하다가 점점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그 후 사람들은 서시를 '침어(沈魚: 미모가 너무나 아름다워 그것을 감상하던 물고기를 강 밑으로 가라앉게 했다는 뜻)'라고 하게 되었다는데, 이런 얘기는 믿거나 말거나^^

말이 나온 김에 4대 미녀에 대해 더 알아보죠.
낙안(落雁)은 왕소군을 가리키는데, 타고난 미모로 오랑캐인 흉노에게 시집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나는 중 기러기를 보고 고향 생각이 나서 금을 탔다고 합니다. 이 때 기러기가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걸 잊어버리고 땅에 떨어지는 바람에 낙안(落雁) 이라는 칭호를 얻었다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죠? 믿거나 말거나^^)

폐월(閉月)은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초선이라는 여인으로부터 유래했는데, 왕윤이라는 사람이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기 위해 사용한 미인계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저녁 초선이 화원에서 달구경을 하고 있는데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렸습니다. 이를 보고 왕윤이 ‘내 딸의 미모는 달조차 부끄러워 구름 뒤에 숨는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말이 바로 폐월(閉月)입니다.

수화(羞花)는 바로 양귀비를 칭하는 말인데, 어느 날 양귀비가 화원에서 꽃을 감상하다가 함수화라는 꽃을 건드렸는데, 함수화가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고 하네요. 이를 본 현종이 “그녀의 아름다움은 꽃조차 부끄러워하는구나" 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인 현종에게 뭔들 제대로 보였겠습니까^^

이야기가 샜습니다. <사기>에 나오는 인물을 중심으로 얘기하는 자리니, 위 4대 미녀들 중에서 오늘은 서시에 대해서만 얘기하겠습니다.

서시에게는 또 다른 유명한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데요, ≪장자≫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어느 날 서시가 마음 속에 근심이 가득하여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찌푸리며 마을을 걷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인은 무얼 해도 예쁘다고 하지 않나요^^. 이마를 찌푸려도 여전히 아름다운 서시의 모습을 보고, 이 마을의 추녀가 자기도 서시처럼 하면 아름다워 보일까 하여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걸어다녔다고 하네요.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이 추녀의 모습을 보고 모두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는 황급히 집으로 들어가 대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 참,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있었겠습니까만은, 여하튼 이를 ‘서시빈목’이라고 하고 남의 흉내를 함부로 내는 것을 ‘효빈’이라고 합니다. 서시빈목=효빈=서시효빈=서시봉심, 모두 같은 말입니다. (상용한자에 포함되지 않는 한자가 있어 한자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을 찌푸린다는 뜻의 ‘빈축’도 아마 여기서 유래한 것 같은데, 확실치 않습니다.

서시는 중국 최초 또는 역사상 최초의 여성 첩보원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지지난 시간에 ‘범려와 서시’를 이야기할 때 미리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전쟁 중에 모국인 월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서시는 적국 군왕 부차(夫差)를 유혹하기 위한 민족의 사명을 짊어지고 부차의 애첩이 되어 그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이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인계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뭐, 이런 얘기^^오와 월의 끈질긴 싸움 얘기는 지지난 시간 오월동주 편에서 자세하게 말씀드렸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고 서시와 관련된 얘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구천이 쓸개 맛을 보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 때, 오왕 부차를 안심시키기 위해 많은 보물을 보내고 미인들도 여러 차례 선사했는데 별 효험이 없자, 월나라 대부 범려가 직접 전국 각지를 돌면서 절색의 미녀를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하루는 범려가 저라산(苧蘿山) 기슭에 이르렀는데, 약야계(若耶溪)라고 하는 곳에 두 명의 미녀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두 미녀가 바로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인데, 범려는 그녀들의 자태를 보자마자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세상에 보기 드문 보물이 되어 반드시 오왕 부차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월나라의 미래는 저 여인들에게 달려 있도다!"

범려는 곧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그녀들에게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서시와 정단은 무릎을 꿇어 절을 올리고, 연약한 시골 여자의 몸으로 이렇게 중요한 국가의 대사를 맡게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을 다짐합니다.

이제 자신이 생긴 범려는 회계산 부근에 비밀 장소를 마련하여 미인계를 성공시킬 계책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나갑니다. 여기에는 서시와 정단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미녀 10여명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임금에 대한 충성, 애국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기타 여러 지식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가무(歌舞), 몸가짐, 예절과 사람을 유혹하는 기교 등 오왕 부차를 홀리기 위한 특별 지도를 하는데 이것을 담당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월나라 기녀계의 대모가 하지 않았을까요? 첩보원의 임무를 띠고 있는 이상 정보 수집 지식과 기술도 필수 과목이었습니다. 이러한 집중 교육을 통하여 쉬리의 김윤진 못지 않은 실력을 갖춘 전사로 만들어집니다.

드디어 오나라로 출발. 아, 그런데 어느새 범려는 서시와 사랑에 빠져 버렸고 급기야 서시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천하의 명재상 범려도 서시 앞에서는 어쩔 수 없네요^^. 서시는 범려와 헤어질 수도 오왕에게 가지 않을 수도 없게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 배부른 미인을 오왕에게 바칠 수 있었겠습니까? 오나라로 가는 도중에 가흥(嘉興)이라는 지방에 이르러 범려는 서시가 풍토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유로 반년 간 그곳에 머무르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가련하게도 이 어린 아이는 버려지게 됩니다.
한 나라의 대부(大夫)라고는 하지만 진심으로 사람하는 사람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 듯 아팠을까요.

범려는 서시 등을 데리고 고소대(姑蘇臺)에서 부차를 알현하고 그녀들을 선물로 바쳤습니다.
예상대로 오왕 부차는 오나라의 모든 미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서시와 정단을 보자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물론 오나라의 상국(相國) 오자서(伍子胥)는 이를 경계하여 넋나간 채로 미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부차에게 이렇게 간언했다고 합니다.

"신이 듣기로 하(夏)나라는 매희 때문에 망하였고, 은나라는 달기 때문에, 주나라는 포사 때문에 망했다고 합니다. 미녀는 군주를 주색에 빠지게 해서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니 이들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냥 돌려보냈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야겠지만, 천하의 미녀들 앞에서 부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걸왕(桀王) 도 주왕(紂王)도 아니고 주(周)의 유왕(幽王)도 아니니, 오상국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월나라에서 바친 미녀들을 모두 받아들인 부차는 그 중에서도 역시나 서시에게 푹 빠졌다고 합니다. 서시는 훈련된 첩자로서의 신분을 철저하게 숨겨 부차가 전혀 의심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부차는 서시를 위하여 대규모 공사를 통해 영암산(靈巖山)에 화려한 관와궁(館娃宮)을 지어 온갖 보석으로 호화롭게 장식하였다고 합니다.
거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땅을 파서 큰 옹기를 묻어 평평하게 한 후 그 위를 다시 두꺼운 나무로 덮은 회랑을 만들게 하여 그것을 '향리랑(響履廊)'이라 하였는데, 서시가 이 향리랑 위를 걸어갈 때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영롱하게 울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공호수까지 만들어 그 주위에 아름다운 화초를 심고 호수 안에서 배를 띄워 함께 놀았다고 합니다.

결국 부차는 서시와 정단의 갖은 애교로 완전히 빠져 정사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는데, 역대 망국의 군주들이 걸었던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범려의 계획 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추진되어 갔던 것이죠.

한편 월왕 구천은 몸을 낮추어 남들의 의심을 사지 않게 하면서 오로지 복수의 날만 기다렸습니다. 오나라가 대외 원정을 떠나 국내에 군사력이 완전히 빠지면 오나라를 공격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마침 서시로부터 오나라가 제(齊)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구천은 그때를 틈타 병력을 파견하여 오나라를 돕는 척 하면서 오왕 부차의 환심을 사두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제나라 정벌에 성공하자 오나라 상국(相國) 오자서는 이 기회에 월나라마저 파멸시켜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구천으로서는 복수의 최대 걸림돌인 셈이죠. 월나라는 이 오자서를 없앨 작전을 짜는데, 그 주요 임무가 서시에게 주어졌습니다.
서시는 갖은 교태를 부리며 오왕 부차에게 오자서에 대한 험담을 하기 시작했는데, 오자서와 사사건건 의견 충돌을 벌이던 백비도 가세합니다. 결국 부차는 오자서의 충정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문제로 인해 의견 충돌이 벌어지자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살할 것을 명합니다.

오자서는 탄식하며 이렇게 유언을 남깁니다.
“내 무덤 위에 꼭 나무를 심어서 그 나무가 자라 왕의 관을 만들 수 있게 하라. 그리고 나의 두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에 걸어 두어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게 하라”
이에 크게 노한 부차는 그를 잔인하게 찢어 가죽 주머니에 싸서 바다에 버리도록 했습니다. 오자서가 죽은 후 백비가 정사를 맡게 되고, 오나라는 패망의 길로 접어듭니다.

주(周) 경왕(敬王) 38년 가을, 오왕 부차는 제후들의 패자를 결정짓는 황지(黃池)의 회맹에 참가하기 위하여 직접 오나라의 정예 병사를 이끌고 오나라를 떠납니다. 이로 인해 오나라의 도성은 텅 비게 됩니다. 부차가 황지에서 위엄을 떨며 으스대고 있을 때, 구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나라의 도성을 공격해 들어가 오나라 태자를 고소대(姑蘇臺)에서 불에 태워 죽이고 맙니다. 오왕 부차는 패자로서 위엄을 잃을까봐 태자가 죽은 것도 숨겨가며 급하게 월나라에 휴전을 제의합니다. 아직 때가 덜 됐다고 조언하는 범려의 말을 듣고 구천은 휴전을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4년 후 오나라에는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은 기근에 시달릴 때, 구천은 총 공격을 단행합니다. 오나라 수도를 손쉽게 포위하였으나 수도를 완전히 정복하는 데에는 2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2년 여의 지구전 끝에 부차는 결국 항복을 합니다. 범려가 부차를 죽여야 한다고 충언했으나 구천은 그를 살려 두었습니다. 그러나 오왕 부차는 스스로 자결하고 맙니다.

오왕 부차가 자결할 때, 오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뜨거운 분노를 모두 서시에게 쏟아 부었고 그녀를 비단으로 꽁꽁 묶어 양자강 가운데 빠뜨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동파이물지(東坡異物志)≫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양자강에는 미인어(美人魚)가 있는데 서시어(西施魚)라고도 한다. 하루에 여러번 그 색깔을 바꾸며, 살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 아녀자들이 그것을 먹으면 더욱 아름다워진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서시의 화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하나의 전설일 뿐 정사(正史)는 아닙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오나라가 멸망되는 날 범려는 고소대(姑蘇臺) 아래에서 옛날의 애인 서시를 찾아 황급히 태호(太湖)로 도망가서 그녀와 함께 일엽편주를 타고 아득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산동(山東)에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부(巨富)가 나타났는데, 그의 아내는 꽃처럼 아름다웠으며 부부의 금슬도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이 도주공이 바로 범려이고 그의 아내는 월나라의 미인 서시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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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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