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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5-08-02 02:15:33, Hit : 23937, Vote : 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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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 / 범려와 서시(西施)
오월동주와 와신상담 -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 생략할까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단순 사건 외에 꽤 많은 중량급 배우들이 출연하는 관계로 정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르고서는 <사기>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을 정도로 꽤 비중 높은 인물들이니까요.

등장인물

  • 오나라의 주연급 : 오나라 왕 합려와 부차, 외교고문 오자서(伍子胥)
  • 월나라 주연급 : 왕 구천과 대부 문종, 범려
  • 여기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도 이 당시 오나라의 병법가였는데 엑스트라로 등장하고, 찡그린 모습마저 아름다워 장안의 여자들이 얼굴을 찡그렸다는 미녀 서시도·등장합니다. 서시는 월나라 사람인데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뇌물(?) 중의 하나이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스파이입니다. 여기서는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 그 외에 오나라 평왕(平王), 부시종장 비무기(費無忌),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申包胥), 오나라 태자 백비 등이 엑스트라로 등장합니다.
  • 관련 고사 : 일모도원(日暮途遠), 오월동주, 와신상담
  • 출처 : 〈월세가〉〈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와신상담과 오월동주로 표현되는 오와 월의 싸움은 조금 후에 하기로 하고, 그 전에 오가 초나라를 이겨 패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먼저 꺼내야겠습니다. 오와 월의 본격적인 싸움은 그 이후에 진행됩니다.

오자서(伍子胥)와 일모도원(日暮途遠)

오나라가 초나라를 정복하며 춘추시대 패자가 되는 데에는 오자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자서는 원래 초나라 사람인데, 그의 아버지와 형이 비무기의 음모로 평왕에 의해 죽게 되자 송나라로 망명을 합니다. 송나라에는 초나라 태자도 망명해 있었습니다. 역시 비무기의 음모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송나라에서 정나라로, 다시 진나라로 떠다니다가 진나라 경공과 모의하여 정나라를 망하게 하기 위해 정나라에 머물던 중 정나라 왕에 의해 태자가 처형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오자서는 어떤 노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양자강을 건너 오나라로 피신합니다. 여기서 오나라의 장군 공자 광을 만나게 됩니다. 공자 광은 훗날 오나라 왕을 죽이고 대신 왕에 오르니, 그가 바로 오나라 왕 합려입니다.
합려는 왕이 되자 오자서를 중용하고 초나라를 멸망시킵니다. 초나라의 서울을 함락한 후 오자서는 원수인 평왕이 이미 죽고 없자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3백 번이나 매질을 했다고 합니다.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는 멀리 피신해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이 사람을 보내 “그대의 복수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라고 하자 오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 여기서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말이 비롯되었습니다.
오왕 합려는 태자 부차를 시켜 초나라를 완전히 점령하고, 오자서와 손무의 계책에 따라 제나라와 진나라, 월나라까지 정복하여 천하를 호령하게 됩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잘 나가던 합려도 당시 힘을 키우고 있던 월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마는데, 이 때 월나라의 왕이 바로 구천입니다. 이 전투에서 합려는 손가락을 다쳤는데 재수 없게도 파상풍으로 번져 결국 죽고 맙니다. 합려는 태자 부차에게 유언을 합니다. “원수를 갚아다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장작개비 위에서 잠을 자면서 몸이 쑤실 때마다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장작개비 위에서 잠을 자다, 이것이 와신(臥薪)입니다.

이때 월나라 구천은 범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나라에 싸움을 겁니다. 이를 갈고 있던 월왕 부차는 구천을 완전히 제압하고, 구천은 범려의 조언에 대부 종을 보내 부차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굴욕적인 항복합니다. 이때 오자서가 항복을 받아들이지 말고 월왕을 죽여야한다고 하자, 구천은 오나라 태자 백비에게 뇌물을 바쳐 아버지 합려가 구천의 항복을 받아들이도록 만듭니다. 오자서는 끝까지 반대했지만 묵살.

그후 구천은 복수를 다짐합니다. 언제나 쓸개를 걸어 두고 음식을 먹을 때 마다 쓸개의 쓴맛을 보면서 치욕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맛볼 상, 쓸개 담, 상담(嘗膽)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와신상담과 비슷한 말로 ‘회계지치(會稽之恥)’라는 말도 있는데, 월왕 구천이 오왕 합려에게 몰려 마지막까지 싸웠던 곳이 회계산이기 때문에 회계산의 치욕을 씻다는 뜻입니다.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서시(西施)

구천은 모든 국정을 대부 종에게 맡기고 범려와 함께 오나라 부차 밑에서 구금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밭에 나가 일을 하며 백성과 동일한 생활을 하며 지냈습니다. 고기도 먹지 않고 수수한 옷만 골라 입고 유능한 신하에게 고개 숙여 가르침을 받고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정중히 대우했습니다. 그러면서 복수의 그날을 차근차근 준비해갔습니다. 월나라가 안정되고 국력이 갑자기 강해지는 것을 알면 오나라에서 경계할 것이므로,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가 자기 몸을 감추듯 죽은 듯이 있었습니다. 당시 범려는 부차의 말을 기르고 마차를 호위하는 일을 했습니다. 구천은 이렇게 3년의 구금 생활을 끝내고서야 월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 오왕 부차는 주위 나라를 치면서 세력을 확장해나갔는데, 부차가 제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 구천이 자진하여 부하를 이끌고 와서 돕는 한편 보물을 바쳤습니다. 이 때 월나라 미녀 서시를 부차에게 바칩니다.

서시는 훗날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2대 미녀로 손꼽히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그녀를 주제로 한 연극과 영화가 여전히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서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경국지색의 미녀를 소개할 때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이 시기를 오월동주의 시기라고 합니다. 훗날의 처절한 복수를 위해 겉으로는 서로 협력하는 척하는 시기입니다.

오자서의 죽음과 구천의 복수

오자서와 사사건건 다퉈 왔던 백비에게 오자서는 늘 눈엣가시였습니다. 오자서가 부차의 명령으로 제나라에 다녀오는 동안 백비는 오왕 부차에게 참언을 합니다. 당시 서시에 푹 빠져 넉을 잃고 있던 부차는 촉루지검이라는 칼을 보내 오자서에게 자결할 것을 명령합니다.
오자서는 죽기 전에 이렇게 유언합니다.
“내 무덤 위에 꼭 나무를 심어서 왕의 관을 만들 수 있도록 하라. 그리고 나의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에 걸어 놓아 월나라 군사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게 하라.”

오자서가 죽고 2년 후, 부차는 몇몇 왕을 불러놓고 탁고 지방에서 회맹을 하는 등 스스로 패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그가 위엄을 과시하며 황지에서 회맹을 하던 때 구천은 텅 빈 오나라 수도를 순식간에 점령합니다. 십 수 년을 벼르고 별렀던 복수전에서 가볍게 승리합니다. 이때 구천은 완전한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어 오왕 부차의 휴전 제의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4년 후 오나라는 잦은 전쟁으로 국력이 약화되어 있을 때, 월나라가 총공격을 단행합니다. 오나라 수도를 포위한 채로 자그마치 3년 동안의 지구전을 펼친 끝에 부차는 항복을 하게 됩니다.
구천이 부차의 항복을 받아들이려 할 때, 범려는, 그를 죽이지 않고서는 회계산의 치욕을 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구천은 부차에게 자살을 하게끔 만듭니다. 부차는 죽으면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구나.”하며 헝겊으로 얼굴을 덮었다고 합니다.

주 왕실은 구천에게 패자의 칭호를 주었으며, 월나라는 오나라를 이어 춘추시대 최후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범려와 서시

서시 이야기는 다음에 한다고 해놓고 왜 갑자기 서시냐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범려 이야기를 하면서 서시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서해문집 <사기 1>에서 서시를 짧게 다루고 있고, 게다가 범려와의 관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어, 이를 조금 보충하려 합니다.

위에서 구천이 부차에게 보물을 선물하면서 서시까지 딸려 보냈다고 했지요. 이때 함께 간 미녀가 서시만은 아니었으며 정단(鄭旦)을 포함하여 10여명이었다고 하는데, 이들을 발굴해낸 사람이 바로 범려입니다. 왜 제가 발굴이라고 표현했냐면요, 이들은 부차에게 보내지기 전에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던, 요즘말로 스파이에 해당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서시가 미모나 여러 면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범려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급기야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부른 서시를 부차에게 바칠 수 없어 오나라로 가는 도중에 풍토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속여 반년 여를 가흥이라는 곳에 머물게 했습니다. 여기서 아이를 낳았으나 결국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후 서시는 부차에게 보내지고, 부차는 다른 미녀들보다 오로지 서시를 유독 좋아했다고 합니다.

서시는 역할을 매우 훌륭히 해내어 오나라를 멸망하도록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웁니다. 오나라가 망하던 날 범려는 옛 애인 서시를 찾아 황급히 도망나와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것이 정사이고, 실제 민간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는, 오왕 부차가 자결할 때 오나라 사람들이 그녀를 비단으로 꽁꽁 묶은 채 양자강에 빠뜨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더 정사(正史)같죠?
범려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부귀영화를 버리고 이름을 숨긴 채 오호(五湖)를 유랑하면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범려는 도대체 누구인가?
범려는 월나라 대부로서 월나라가 오(吳)나라에게 패하였을 때 구천을 따라 오나라에 3년간 인질로 잡혀있었으며, 그후 석방되어 월나라로 돌아가서 월왕 구천을 도와 각고의 노력으로 부국강병을 시행하여 결국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일등공신입니다.
그러나 범려는 ‘이미 목적을 달성한 군주 곁에 오래 있는 것은 위험하다. 구천은 고생을 함께 나눌 수는 있어도 편안함을 나누지는 못할 인물이다.’라고 판단하고는 구천에게 편지를 남기고 제(齊)나라로 건너 갑니다. 거기서 그는 이름도 치이자피(鸱夷子皮)로 바꾸고 농사를 지으면서 농한기에 장사를 하여 큰 부를 쌓았다고 합니다.
얼마후 제나라 왕이 그 명성을 듣고 그를 도성 임치(臨淄)로 초빙하여 상국(相國)에 임명하였으나 범려는 2~3년간 상국의 자리에 있은 후, "집에 있을 때는 천금의 재산을 쌓았고, 관직에 있을 때는 재상의 지위에까지 이르렀다. 자수성가한 평범한 백성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미 갈 수 있는 데까지 다 가본 것이다. 고귀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도 좋지 않은 징조이다."고 하면서, 관직을 반납하고 재물은 친구와 해안가의 농민들에게 전부 나누어준 다음, 아내 서시(西施)와 두 아들을 데리고 서쪽으로 가서 도(陶: 지금의 산동성 정도<定陶> 서북쪽)에 은거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이름으로 무역을 하여 거부가 되어 그 명성을 천하에 떨쳤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도주공"이라는 이름은 부호의 대명사로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사기>는 범려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범려는 세 번이나 옮겨가면서도 가는 곳마다 이름을 떨치고 후세에 전하고 있다”
<사기>를 통틀어 이처럼 그 끝이 좋은 사람도 드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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