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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5-08-01 22:56:48, Hit : 9286, Vote : 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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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관중(管仲)
등장인물

  • 주연 : 환공(桓公=소백), 양공(襄公), 규(糾), 관중(管仲), 포숙(鮑叔)
  • 조연 : 문강(文姜), 소홀, 무지, 옹림 땅에 사는 어떤 사람, 역아, 개방, 수조 등
  • 관련고사 : 관포지교(管鮑之交)
  • 출처 : 〈관안열전〉
춘추오패 중 최초의 패자는 제나라 환공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 환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환공하면 늘 명재상 관중이 따라다니고 관중하면 역시 ‘관포지교’라는 고사가 따라 다닙니다.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제나라에는 치마만 두르면 아무에게나 손을 대는 폭군 양공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남의 나라인 노나라 왕의 아내와도 정을 통하고 있었다네요. 그런데 왕비라는 사람은 사실 양공의 여동생(문강)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여동생이 시집가기 전부터 불륜의 정을 통하고 있었습니다.
(이거 참, 교육적으로 너무 안 좋네요. 그런데 사기를 문자 대로 읽다보면 음란과 폭력적인 장면들이 많아 너무나 비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을 자르는 참수斬首는 너무나 흔하디 흔하며, 툭하면 대의를 위해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을 하고... <사기> 청소년판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양공은 후에 노나라 왕을 초청해서 독한 술을 먹이게 한 다음 늑골을 부러뜨려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문강과 불륜을 저지릅니다. 동생들도 화가 미칠까 두려워 이웃나라로 망명을 합니다. 동생 규(糾)는 관중과 소홀을 데리고 노나라로, 그 아래 동생 소백(小白)은 포숙을 데리고 거나라로 망명합니다.

역사적으로 폭군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촌 무지가 양공을 죽이고, 또 얼마가지 않아 옹림 땅에 사는 어떤 이가 무지를 죽입니다. 무지를 죽인 사람은 제나라로 달려가 재상에게 빨리 훌륭한 군주를 세워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한다고 말합니다. 이때 제나라 재상은 소백을 왕으로 세우기 위한 작전을 짭니다. 한편 노나라의 규파 측에서는 거나라의 소백을 없애버리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왕권을 놓고 규파와 소백파가 대립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규파의 참모 겸 행동대장은 다름 아닌 관중이었습니다. 관중은 공자 규의 사부였습니다. 관중은 거나라에서 제나라로 돌아가는 소백 일행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소백을 향해 활을 쏩니다. 소백은 말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관중의 작전은 성공한 듯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규 일행은 천천히 제나라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소백이 이미 먼저 들어와 왕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왕이 바로 환공입니다. 관중의 활에 맞기는 했으나 허리띠의 쇠장식에 맞는 바람에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규 일행은 쫓겨나 노나라로 돌아갔는데, 후에 제나라의 요구에 따라 노나라는 규를 죽이고 관중과 소홀을 제나라로 돌려보냅니다. 소홀은 가는 도중에 스스로 죽고, 관중만이 제나라로 돌아왔습니다.

환공은 관중이 돌아오는 즉시 죽이려했지만, 포숙이 말립니다.
"신은 다행스럽게도 처음부터 전하를 따랐기에 오늘 이렇게 전하께서 왕좌에 앉는 영광을 함께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신에게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전하께서 제나라 일국만을 통치하실 생각이라면 고혜와 저 둘만의 보좌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천하의 패자를 바라신다면 관중 외에는 적임자가 없습니다. 관중을 쓰는 나라는 반드시 천하에 중시될 것입니다. 어떻게든지 관중을 데려와야 합니다."
포숙의 간절한 청을 받아들여 환공은 마음을 바꾸어 그를 대부의 벼슬을 내립니다. 물론 그 전에 관중을 직접 만나 얘기해보니 과연 재상감이라고 확신을 한 것이지요. 한편 관중을 천거한 포숙은 오히려 관중의 아랫자리에 들어갑니다.

관포지교는 이런 둘 사이의 깊은 우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관중은 훗날 포숙과의 우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옛날 가난했을 때,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한 일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 내가 더 많이 가져도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에게 이름을 얻게 해 주려고 계획했던 일이 도리어 그를 궁지에 떨어뜨리는 결과가 되었지만 나를 바보라고 욕하지도 않았다. 그는 일에는 잘 될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패하여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게 늙으신 어머니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했을 때도 나는 잡히어 욕된 몸이 되었지만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보다 명예를 천하에 날라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나아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환공에게 파격적으로 등용된 관중은 평생을 환공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서로는 《관자(管子)》가 전해져 오는데, 이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썼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관중 없이는 환공의 패업도 결코 없었던 것을 후대 사람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孔子)도 이러한 관중의 공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환공이 비참한 수단에 호소하지 않고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관중은 환공을 보좌하여 제후의 맹주가 되게 하고 천하의 질서를 회복했으며, 그 은혜는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 만약 관중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랑캐의 풍속을 강요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환공은 관중의 도움에 큰 힘을 입어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가 됩니다. 환공이 등장하는 대개의 장면에는 늘 관중이 함께 합니다. 그러나 관중도 역시 사람인지라 때가 되면 죽는 법, 그가 죽기 전에 환공은 관중을 대신할 사람으로 어떤 사람이 좋으냐고 묻습니다. 이에 관중은 역아, 개방, 수조 등 환공이 맘에 들어 하는 사람들을 모두 아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여 신임하지 말라고 충언합니다. 그러나 환공은 듣지 않습니다. 아마 운이 다한 듯합니다. 관중이 죽자 그는 총기를 잃고 관중이 믿지 말라는 사람들을 하나 같이 중히 쓰고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고 나라는 기울어 갑니다. 환공이 죽고 제나라는 내란이 일어나는 등 그 후로 다시는 패자의 권위를 찾지 못했습니다.

*
서해문집 <사기 1> p.82에는 춘추시대 패자의 의식과 권위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춘추시대에 패자(覇者)는 맹주로서 열국회의를 주재했는데, 이를 회맹이라고 불렀다. 회맹은 다음과 같이 치러졌다. 단을 만들고 제물로 가져온 소를 끌어내어 죽인 다음 귀를 자르고, 그 귀는 옥반에 담고 피는 돈이라는 그릇에 담는다. 사회자 두 명이 그 그릇을 손에 들고 맹약서를 읽으며 신에게 고하고, 피를 서열에 따라 차례로 받아 마신다. 이때 서열 문제로 자주 다툼이 발생하기도 했다. 패자는 주 왕실을 섬기고, 질서를 문란케 하는 나라는 제후의 군대를 이끌고 응징한다.

환공은 노,송,정,위,허,조 제후들이 참여한 규구(葵丘:河南省)에서의 회맹(會盟)으로 그의 패자(覇者)의 자리가 확립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가 기원전 651년. 이를 포함하여 제환공은 43년 재위기간 동안 26차례의 회맹을 주재하였다고 합니다.

**
≪관자(管子)≫
관중이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후세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총결하여 쓴 ≪관자(管子)≫라는 책 때문일 것입니다. ≪관자≫는 선진시대의 전적 중에서 중국의 고대 경제사상자료가 가장 풍부하게 보존되어 있는 저작이라고 평가됩니다. 현존하는 ≪관자≫는 서한 말기에 유향(劉向)이 그가 수집한 564편 중에서 중복되는 것을 삭제하고 편집한 것인데, 후에 다시 10편이 소실되어 실제로는 76편만 남아 있습니다.
≪관자≫는 정치, 경제로부터 의식형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국가 관리와 인민 통치를 위한 이론과 원칙을 제시한 책인데, "창고가 풍족하면 백성이 예절을 알고, 의식(衣食)이 풍족하면 명예와 치욕을 안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관자≫에서 제시한 경제사상의 이론 기초입니다. ≪관자≫는 재정, 금융, 화폐, 무역, 세제 등의 경제 각 분야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논술한 책으로, 고대 전적 중에서 이보다 상세하게 경제 분야를 논한 저작은 없을 정도이며, ≪관자≫에서 확립된 경제사상은 몇 천 년 간 중국의 봉건경제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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