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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5-08-01 01:06:47, Hit : 16308, Vote : 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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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전국시대로부터 한(漢)나라까지
춘추시대

주나라 평왕이 견융족의 침입을 피해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때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서주시대, 이후를 동주시대라고 한다고 했죠. 그러나 우리에게는 동주시대라는 표현보다는 춘추전국시대라는 표현이 더 익숙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눌 수 있는데, 춘추는 공자의 <춘추>에서, 전국은 전한의 유항이 쓴 <전국책>이라는 책 제목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중국의 주요 철학 사상의 대부분이 형성되고,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수많은 고사성어와 이야깃거리를 남긴 이 시기가 바로 <사기>의 주요 무대입니다.

왜 춘추전국시대인가? 한 마디로 중원의 유일한 패자가 없던 시기여서 딱히 한 나라의 이름으로 대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周) 나라는 말로만 천자의 나라였지, 실제로 종이 호랑이였고, 강성한 제후들의 나라들이 그에 버금가는 나라를 각각 만들어 서로 싸우던 때였습니다. 그 중 힘이 유독 센 나라를 일컬어 춘추시대에는 춘추오패,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이라 하였습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나누는 기준은 분분한데 (←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러 설이 있는데, 나의 기준이 명확치 않다, 줏대가 없다, 뭐 이런 뜻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역사 문화...적으로 좀 더 고찰이 필요할 듯하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아 포기하고...) 청나라 학자 고염무의 <일지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춘추시대는 예를 숭상하고 신을 중히 여겼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이건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인 것 같네요.)
춘추 시대에는 주 왕실을 숭앙했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런 일이 없다. (나름대로 유효한 것 같습니다. 속이야 어쨌든 겉으로는 주 왕실을 섬긴다는 대의명분이 있던 때가 춘추시대였으니까요. 주나라에서 ‘네가 패자다’라고 인정해줘야만 제후국 간의 국제회의 의장으로 인정되었으니까요.)
그 외에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제사를 중히 여기느냐 않느냐, 가문을 존중하느냐 않느냐, 범국가적 연회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등 좀 엉성한 기준들이어서 생략합니다.

그 내용이야 어찌됐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나누는 물리적 기준은 기원전 453년 또는 403년으로 하고 있습니다. 진(晉) 나라로부터 한(韓), 위(魏), 조(趙)가 최초로 독립하거나, 이 세 나라가 주 위열왕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제후로 인정받은 해입니다. 따라서 전국시대는 진(晉) 나라로부터 한(韓), 위(魏), 조(趙)가 분리된 시기로 본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초기에 중국에는 약 천여 개의 소도시 국가가 있었는데 춘추시대를 거치면서 백여 개 나라로 정리됐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나라 14개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秦, 趙, 晉, 齊, 楚, 魯, 魏, 燕, 曹, 宋, 陳, 蔡, 鄭, 吳, 越
진, 조, 진, 제, 초, 노, 위, 연, 조, 송, 진, 채, 정, 오, 월
한자로 쓰지 않고 한글 독음만 쓰면 진나라가 셋, 조나라가 둘이나 되어 좀 헷갈립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그들 주변의 이민족(=오랑캐)의 침략을 방어하고 왕을 숭상한다는 존왕양이를 대의명분으로 제후국 간의 동맹을 맺었는데, 이 동맹의 수장을 패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중 가장 강력했던 다섯 명의 제후(제후국의 왕)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부릅니다.
제 환공, 진 문공, 초 장왕, 송 양공, 진 목공이 바로 그들인데, 송 양공과 진 목공 대신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을 넣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 고사가 유명합니다. ‘오월동주’라는 고사도 있구요. 여기서는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을 춘추 오패로 가정하고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춘추오패(春秋五覇)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상 중 하나로 꼽히는 관중의 도움으로 최초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관중은 ‘관포지교’ 고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관중의 죽음 이후에 나라가 엉망이 됐다죠.
진(晉)나라 문공(文公) 춘추시대에는 초나라가 모든 제후국들의 골칫거리였는데, 이 초나라를 격파한 진 문공이 두 번째 패자가 됩니다. 진 문공 뒤에는 진(秦)의 목공(穆公)이 세력을 넓힙니다.
진 문공 때 패배한 초나라는 초(楚) 장왕(蔣王) 때 진의 지배를 받던 정나라에 이어 진(晉)나라까지 격파하여 중원의 세 번째 패자로 등극합니다.

오와 월의 이야기는 대부분 알다시피 와신상담의 주인공인 오나라 부차와 월나라 구천의 이야기로,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때는 춘추시대 말기. 양자강 하류에 오와 월이라는 두 나라가 그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오와 월은 서로 중원의 패자가 되기 위해 싸움질을 했는데,
청 코너~ 오나라에는 합려와 부차, 그리고 천하의 명재상 오자서가
홍 코너~ 월나라에는 월왕 구천과 대부 종, 그리고 범여가 활약합니다.
선대의 원수를 갚겠다고 마른 장작에서 잠을 자며 복수를 꿈꾸던 부차. 결국은 복수에 성공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법. 십여 년을 복수의 칼날을 갈며 쓸개를 먹으며 복수를 맹세한 구천. 그들의 시대를 풍미했던 오자서와 대부 종, 그리고 범여. 이들의 이야기는 사기 곳곳에서 수많은 책사들의 말 속에 감초처럼 등장합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겠습니다. (지금은 사기의 주된 무대가 되는 역사적 시기를 대충 훑어보는 시간!)

전국시대

전국시대에 접어들면, 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오로지 사력을 다한 생존의 싸움만 남게 됩니다. 훗날 진시황이 이 모든 나라를 평정하고 나서야 전국시대는 끝이 납니다.

춘추시대에 춘추오패가 있었다면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이 있습니다. 연(燕), 제(齊;田씨의 나라), 한(韓), 위(魏), 조(趙), 초(楚), 진(秦) 등입니다. 춘추오패 가운데 송, 진, 오, 월 등이 사라졌던데 대신 한, 위, 조 3국이 새로 등장했습니다. 이 3국은 진(晉)으로부터 분리하여 독립했는데, 바로 이 시기부터 전국시대라고 부릅니다.
전국시대의 최대 강자는 훗날 전국시대를 마무리하는 진나라인데, 진나라가 초강대국이 된 데에는 재상 상앙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상앙은 효공 때의 인물인데 전면적인 개혁조치를 통한 법치주의로써 부국강병을 실현했습니다.

전국시대는 한 마디로 합종연횡(合從連衡)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합종연횡이라는 말이 이때에 비롯되었는데,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서쪽의 진(秦)에 대항하기 위해 동쪽의 여러 나라들이 세로로 연합하자는 합종론. 그리고 진나라와 평화적 제휴관계를 유지하자는 연횡론을 함께 일컫는 말입니다.
합종책의 대표는 소진(蘇秦). 소진은 자그마치 여섯 나라의 재상으로 등용됩니다. 연횡책의 대가는 장의(張儀). 장의는 진나라의 재상으로 등용되어 여러 나라를 돌며 교묘하게 연횡책을 제시하며 대항 세력의 결집을 각개 격파합니다. 그 외에도 원교근공(먼 나라와 화친을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는 전략)의 범수, 천하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명장 백기도 이 시대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통일 국가의 시작, 진(秦) 나라

명장 백기가 활약하여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던 때의 임금은 소양왕. 그의 뒤를 이어 왕에 오른 이가 ‘정’. 이 ‘정’이 훗날 천하를 통일하고 스스로 황제라 일컫게 되는 진시황입니다.
정은 왕위에 오르자 법가 사상을 주장하는 이사를 등용하고, 이사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위한 강력한 법치를 적용합니다. 그리하여 정이 즉위한지 26년 만에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던 제나라를 무너뜨리고 최초로 중국 전역을 통일하게 됩니다.

중국을 통일한 후, 전국적 규모의 군현제 실시, 문자 통일, 화폐 통일, 도량형 통일, 수레 규격 통일 등을 통해 중앙집권국가로서의 틀을 마련합니다. 그러나 만리장성의 축조와 아방궁, 여산릉을 만들면서 민심은 이반되고, 분서갱유라는 전무후무한 이벤트를 진행하다가, 시황제가 죽고 불과 3년 만에 망하고 마는데, 이 시기가 항우 유방 주연 대하다큐소설 초한지의 배경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천 년의 세월이 멀다하지 아니하고 시황제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화의 댐을 만든다고 국민의 돈을 갈취하고,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는 일이 변방의 어느 나라에 있었다고 합니다.

명실상부한 통일 제국, 한(漢) 나라

기원 전 202년 2월, 항우를 물리친 유방이 황제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한고조입니다.
고조는 개국공신들에게 논공행상을 했는데, 한신에게는 회북 지방의 초왕에 책봉했다가 모반의 죄를 덮어씌우고 끓는 물에 삶아 죽였으니, 이로부터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팽월도 양왕으로 책봉되었으나 죽었고, 회남왕 영포는 그래도 그냥 죽기 뭣해서 대들다가 죽었습니다.
한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너무나 유명하여 초한지의 한 문구를 리바이벌합니다.
“약은 토끼가 죽고 나니 공을 세운 양견은 무용하다하여 죽음을 당하게 되고,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게 되면 양궁은 소용이 없다 하여 감추어지고, 적국이 없어지면 충신이 멸망된다는 속담이 있다. 이미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는 죽게 되는구나.”

역사를 통틀어 이와 같은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으니, 도대체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역에 이르기를 “솟아 오른 용은 반드시 후회한다(亢龍有悔)”고 했는데, 이를 경계하라는는 뜻이 아닐까요?

한의 역사 중에서 오초 7국의 난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한의 6대 효경제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때 각 지역 왕들의 영토 삭감을 통해 중앙 정부의 힘을 강화하려고 했는데, 오왕 비는 이러한 정책에 반발하여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초,조,교동,교서,지천,제남 등 6국이 오나라와 연합했는데, 이렇게 일어난 난을 오초 7국의 난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난은 명장 주아부에 의해 평정이 됐습니다. 이 난이 평정됨으로써 한은 강력한 중앙 정부로서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천이 태어난 시기는 아마 이 때쯤일 거라고 합니다.
효경제를 이어서 무제(武帝)가 즉위했는데, 이때가 사마천이 주로 활동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이를 지배하고자 군현(=한사군;낙랑군,현도군,임둔군,진번군)을 설치한 것도 바로 이 때이 일입니다.
이후 한 왕조는 전한과 후한을 합하여 400여 년 동안 지속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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