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06월18일 / 540건

     요즘 읽고 있는 책

     최근 11월25일 / 31건

     최근 08월07일 / 7건

     최근 06월17일 / 101건

     최근 05월24일 / 53건

     최근 01월23일 / 133건

     최근 07월02일 / 190건

     최근 06월04일 / 43건

     최근 02월09일 / 158건

     최근 02월09일 / 158건
               개발
               기타

 

 


0
 7   1   1
  View Articles

Name  
   손병목 (2005-07-31 06:44:10, Hit : 8453, Vote : 924)
Homepage  
   http://www.itmembers.net
Subject  
   삼황오제에서 주周나라까지
중국 역사는 삼황오제로부터 시작합니다.
참, 실제로 중국사에서 중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나라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원인이 《사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경기대 김기봉 교수는 말합니다.

“진시황의 통일제국 진 이후 중국은 계속 있었던 것으로 생각해왔다. 원이나 청나라 같은 오랑캐가 중국을 차지했어도 여전히 중국이 존재해 있는 것으로 중국사를 서술하는 정사의 전통이 《사기》를 통해 마련됐다. 중국이 문명의 빛이라면, 그 밝음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어두운 그림자로서 오랑캐의 역사가 발견됐다. 오랑캐의 역사는 중국사에 포함됨으로써만 의미를 가지며, 그 타자들을 중화문명으로 길들이는 것이 천도를 실천하는 ‘명백한 운명’으로 보는 중화주의 역사관이 《사기》에 의해 정립됐다. 따라서 오늘의 역사가는 사마천의 인간 운명을 탐구하는 불굴의 역사정신은 계승해야 하지만, 역시 아버지가 남긴 중화주의라는 긴 그림자는 지워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005.7.29 한겨레 책/지성 섹션 <치욕적인 삶 치열한 ‘역사 혼’으로> 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삼황이란 신농씨, 복희씨, 수인씨를 가리키는데, 사마천은 이들 존재를 의심하여 《사기》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이들 삼황에 대해서는 정재서 교수가 쓴 <이야기 동양신화>를 보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사기》는 삼황을 건너 뛰고 오제 시대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오제본기>입니다.

서해문집에서 나온 <사기 1,2,3>은 사마천의 《사기》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본기> 중 전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는 부분만 간략하게 정리하고, <열전>과 <세가>를 중심으로 편자가 재구성하였습니다. 《사기》를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한 책으로는 까치글방에서 나온 <사기본기><사기세가><사기열전> 시리즈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정리하는 삼황오제로부터 한나라까지의 역사는 서해문집의 <사기 1>의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사기 열전과 세가를 읽기 전에 배경 지식으로 알고 있으면 좋은 내용입니다.

중국 역사의 시작, 삼황오제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기》에는 삼황의 언급은 없습니다. 바로 오제로 넘어가는데, 오제 시대를 연 황제(黃帝)로부터 시작합니다.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신화>를 보면 황제 역시 ‘지상의 낙원 곤륜산에 살며 천상천하를 호령한’ 신화적 인물로 그리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실존 인물인지 신화인지 분간할 길이 없습니다. 좀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그건 제 주제를 넘는 일이라 생략하고, 오제 시대를 간략하게 요약하겠습니다.

황제의 성은 공손, 이름은 헌원입니다. <사기 3>의 부록에 실린 연표를 보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황제헌원씨가 바로 이 황제입니다.
헌원은 치우와 ‘탁록의 들판’에서 맞대결하여 이김으로써 모든 제후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천자로 삼았는데, 그가 바로 황제입니다.
그런데 이 탁록의 대결을 실재 사건으로 봐야할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치우는 전쟁의 신이며, 이 싸움에서 바람의 신 풍백, 비의 신 우사, 거인 과보, 산도깨비 이매 등을 대동하여 싸웠다고 합니다. 후에 항우와 힘겨운 싸움을 하던 한고조 유방은 치우의 힘을 빌리기 위해 그에게 극진한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볼 수 있을까요? 아마 사실일 수도 있을 겁니다. 문자가 없이 구전하여 내려온 얘기가 신화로 발전했다고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삼황오제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는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신화>를 보세요~)

오제는, 황제, 전욱, 곡, 요, 순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들의 계보를 외는 것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고....’ 하는 것보다 더 재미없는 일일 것 같습니다. 전공자가 아니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구요. 그래서 건너 뛰고!

성군의 대명사인 요와 순 임금만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요 임금(=제요)는 농업을 중시하였으며 일 년을 366일로 하고 3년에 한 번 윤달을 둔 것도 요 임금 시대의 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요임금의 최대 업적은, 요즘 말로 ‘전문경영인’에게 가업을 넘겨준 것과 비슷하게, 후계자를 자식에게 넘기지 않고 “신분이 누구이든, 어디에 살든, 어떻게 살든지 불문하고 온 세상을 샅샅이 뒤져사라도 훌륭한 인물을 찾아 오라.”고 한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추천된 사람이 순이라는 인물입니다. 그 때 순의 나이 30세였습니다.
요 임금은 순에게 자그마치 30년에 걸친 후계자 수업을 진행합니다.
요 임금이 죽자 순은 요 임금의 적자인 단주에게 왕위를 넘기고 황하의 남쪽으로 피신합니다. 그러나 모든 제후들이 순을 찾아와서 천자로 여기게 되자 “하늘의 명령이구나. 어쩔 수가 없다.”고 하며 천자에 오릅니다. 그의 나이 61세 때의 일입니다.
이 시절을 오늘날까지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요순시대’라고 합니다.

순 임금 역시 그의 후계자로 자식이 아닌 ‘우’를 지목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순 임금이 죽자 우 역시 순의 아들에게 제위를 양보하고 피신하지만 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후들에 의해 천자로 추대됩니다. 우 임금으로부터 하(夏)나라 시대가 열립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 하(夏나)라

우는 황제 헌원의 자손이며, 우의 아버지는 곤이라 하는데, 곤은 왕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요 임금 시절 곤은 홍수를 다스리는 관리였는데 9년이 되도록 성과가 없어 처벌을 받게 됩니다. 아마 죽었나 봅니다. 순 임금 시절에 이 업무를 곤의 아들 우에게 맡겼는데, 우는 13년 동안 찬 이슬을 맞으며, 집에도 들어가지 않으며 일을 하며 제방에 물이 넘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우의 능력과 백성의 신임을 확인한 순은 그를 후계자로 정하였으며, 순이 죽자 우가 천자의 자리에 오릅니다.

우로부터 시작한 하왕조는 17대 폭군 걸왕 때 멸망합니다. 은나라 탕왕에게 말입니다.
폭군의 대명사 걸왕은 경국지색의 미인 ‘매희(妹喜)’에게 빠져 지냈는데, 매희를 즐겁게 하기 위해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공사를 합니다. 훗날 은나라 주왕 역시 ‘달기’에게 빠져 주지육림의 숲에서 남녀가 옷을 벗고 뒹굴었다고 합니다. 걸왕과 주왕을 함께 일러 ‘걸주’라 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폭군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사기》에는 나라가 말할 때 항상 여자가 등장합니다. 이른바 ‘경국지색’ - ‘나라가 기울어질 만큼의 미인’이 등장하고, 임금은 이 여인에 휘둘려 지내다가 총기(聰氣 or 銃器^^)를 잃고 나라는 결국 망합니다. 하의 걸왕 vs 매희, 은의 주왕 vs 달기, 주의 유왕 vs 포사가 그러합니다. 경국지색이라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하희’는 자그마치 세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임금, 그리고 한 명의 아들(三夫二君一子)을 죽게 만든 희대의 요부로 기록됩니다.
과연 이 여자로 인해 나라가 망한 것일까요?

은(殷)나라 이야기

은나라의 시조는 설이지만 그로부터 13대가 지나 천을(天乙)이 즉위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성탕(=탕왕)입니다. 탕왕은 이미 부패해질 대로 부패한 걸왕의 하를 정복하고 천자의 지위에 오릅니다. 은나라 제1대 천자입니다.

탕왕은 명재상 이윤(伊尹)을 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탕왕 - 큰아들 태정 - 둘째 아들 외병 - 외병의 아우 - 태정의 아들 태갑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천자를 보위한 명재상입니다.
탕왕 이후 모두 단명하여 즉위한 지 3~4년 만에 죽고 태갑이 천자에 올랐으나 태갑이 놀고 먹는 향락에만 빠져있음을 보고, 이윤은 태갑을 동궁에 감금합니다. 이를테면 가택 연금 상태. 천자를 가택 연금시켜 놓고 이윤이 모든 나랏일을 맡아 봅니다.
이 정도면 뭔가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뭔가 뒤집어 지는 일이 일어날 것처럼 예상이 되는데, 역시 이윤은 명재상이었나 봅니다. 드라마틱하게도 태갑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 개과천선하게 됩니다. 태갑이 확실히 달라졌음을 확인하고 이윤은 그를 다시 천자에 오르게 하였고, 은나라는 평화의 시대라 되었다는 둥 어쨌다는 둥.... 그러다가 17대 주왕에 이르러 망합니다. 주왕은 바로 위에서 말씀드렸던 주지육림의 환락과 폭군의 대명사인 ‘걸주’ 중의 한 명입니다.

주(周)나라 건국

지금의 섬서성 부근의 고원지방에 농경민족인 주(周) 부족이 있었습니다. 이 부족의 시조는 후직이라고 하는데, 후직은 훗날 요(or 순) 임금에 의해 등용되어 후직(농사를 담당하는 신하)이라는 벼슬을 지내게 됩니다. 후직은 벼슬이고 원래 이름은 버릴 ‘기’입니다. 왜 버릴 ‘기’인가. 그의 엄마가 처녀인데 임신을 해서 낳은 아기라 버리고 또 버렸는데, 그럴 때 마다 기이하게 살아났다는, 뭐,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여하튼, 후직으로부터 시작한 주 부족은 이후 고공단보 때에 이르러,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피해 기산 기슭에 자리잡았다고합니다. 고공단보는 조카 서백 창(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서백은 훗날 강태공을 만나 은나라의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게 됩니다. 서백이 죽고 그 뒤를 무왕이 이었는데, 무왕은 강태공(=태공망 여상)의 보좌를 받아 은나라를 물리치고 주나라를 건국합니다.

서주(西周)의 출발

여차저차 해서 주공 단(丹)에 이르러 영토를 확장하게 되었는데, 중원의 통치를 위해 기존의 도읍이었던 호경(鎬京) 외에 낙양 부근에 성주(成周)를 건설했습니다. 이러한 양도병립의 시대를 서주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제국 통치 기반을 마련한 주공 단은 다시 여러 지역을 제후국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송(宋), 제(齊), 위(衛), 노(魯), 진(晉) 등이 그것입니다.
이 상태가 약 280여 년 간 계속되었는데, 유왕에 이르러 서주시대가 끝나고 바야흐로 춘추전국 시대가 전개됩니다. 주의 평왕에 이르러 견융의 침입을 피해 낙읍(=낙양=성주)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하여 동주시대라고도 하는데, 이 때가 기원전 770년입니다.
Prev
   춘추전국시대로부터 한(漢)나라까지 [2]

손병목
Next
   연재를 시작하며 - 《사기(史記) 》의 탄생과 구성

손병목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