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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손병목 (2005-07-30 20:05:22, Hit : 6483, Vote : 840)
Homepage  
   http://www.itmembers.net
Subject  
   연재를 시작하며 - 《사기(史記) 》의 탄생과 구성
일러두기

《사기》의 많은 이야기들은 대개 어디서 보거나 들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볼 때마다 생소한 것은 한 번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이 참에 정리를 좀 해볼까 합니다. 이는 순전히 저를 위해 시작하기는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원래는 서해문집에서 발행한 《사기 1,2,3》의 리뷰를 쓰기 위해 시작했으나, 글의 내용을 보자니 리뷰라기보다는 정리에 가깝게 되었습니다.
이왕 정리하는 것, 마침 휴가 기간이기도 하여, 시간을 좀 더 투자하여 이 참에 《사기(史記) 》를 비교적 꼼꼼하게 정리하려 합니다.

기본적으로 서해문집 刊  《사기1,2,3》의 순서를 따르되, 여타 참고 자료를 좀 더 보강하여 나만의 史記 Summary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참고 자료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거의 ‘사마천의 사기’라는 제목의 사이트( http://giant.x-y.net/ )와 네이버 백과사전을 기본적으로 참조한 것이며,  그외 일부 서적을 참고하여 씁니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1. 사기 1,2,3 (전3권 / 서해문집 / 사마천 저 / 김진연 편역)
2. 인터넷 사이트 <사마천의 사기 세계> http://giant.x-y.net
3. 이야기 동양신화 1,2 (황금부엉이 / 정재서 저)
4. 중국신화전설 1,2 (민음사 / 袁珂 저)
5. 중국통사 (청년사 / 徐連達 외 저)
6. 인터넷 사이트 <중국의 어제와 오늘> http://www.chinabang.co.kr
7. 십팔사략 (미래의창 / 증선지 저)
8. 사기열전 1,2,3 (전3권 / 배재서관 / 사마천 저 / 이주훈 역)

이번 시간은 제 1탄 - 사기의 탄생과 구성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사마천(史馬遷) 사기(史記)의 탄생과 '이릉의 화'

《사기》는 한(漢)나라 때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지은 130권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서입니다.
저자 사마천이 《사기》를 만들 때에는 '이릉의 화'로 인해 궁형(宮刑)을 받은 후였습니다. 궁형은 거세(去勢)형을 말합니다. 당시 선비로서는 죽는 것보다 더 치욕스러운 이 형벌을 받고 끝까지 살아 남아 《사기》를 완성합니다. 그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 전 99년, 한나라 장수 이릉(李陵)이 무제(武帝)의 명을 받고 보병 5,000을 이끌고 흉노 토벌에 나섭니다. 이광리 장군을 도와 흉노의 배후를 기습하였으나 돌아오는 길에 식량과 무기가 떨어지고 8만의 흉노에게 포위되는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항복을 하고 투항을 합니다. 무제는 크게 노하였고 조정의 모든 대신들도 이릉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이 때 평소 이릉을 뛰어난 장수로 생각했던 사마천만이 이릉을 변호합니다. 과거에 이광리 장군과 함께 한 전투에서 이광리가 특별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을 때에도 이릉 장군은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습니다.
사마천의 충언은 무제를 더욱 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광리는 무제의 부인인 이씨의 오빠로, 이광리를 비판한 것은 결국 무제 자신을 비판한 것이라 오해하여 사마천을 무망죄(誣罔罪)로 처벌합니다. 무망죄는 오늘날의 ‘허위 사실 유포죄’(?) 정도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로 인해 사마천은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1) 허리를 잘려서 죽는 요참형(腰斬刑) (2) 50만 전의 금전을 바치고 풀려나는 길 - 오늘날 보석(保釋)과 비슷하긴 하지만 처벌을 완전히 면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 같습니다. (3) 남자의 생식 능력을 없애는 궁형(宮刑).

이쯤 되면 무망죄라는 것이 단순히 허위 사실 유포죄가 아니라, 국가보안법 제7조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 그 이상인 것 같습니다. 하기야 이 때의 이야기를 보면 사람을 죽여 젓을 담거나 포를 뜨거나 허리를 부러뜨리고 사지를 찢는 등 온갖 형벌이 있었으니...
여기서 그는 세 번째 궁형을 택합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2번인데, 그만한 돈이 없었겠죠, 아마. 이 때부터 이미 세상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의 세상이었나 봅니다.

그가 죽기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을 택한 건 오로지 《사기》의 완성 때문입니다.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아들에게 자신이 집필 중이던 사적(史籍)을 완성해 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사마천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온생을 바쳐온 역사서의 완성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기》의 완성을 위해 이 모든 치욕을 감수한 사마천. 이 사건은 이후 그의 삶뿐만 아니라 역사와 과거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삶의 역정이 오히려 역사서 《사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기의 구성과 특징

《사기》라는 제목은 후대에 붙여진 것입니다. 당시 사마천의 역사서는 〈태사공서(太史公書)〉 또는 〈태사공기(太史公記)〉라고 불렸는데, 삼국지위지의 왕숙(王肅)전기에서 《사기》라는 명칭을 처음 쓴 이래로 《사기》로도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사기는 모두 130편으로 되어 있는데 크게 다섯 부분으로 본기(本記) 12편, 표(表) 10편, 서(書) 8편, 세가(世家) 30편, 열전(列傳) 70편등 130편(52만 6천 5백자)으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책을 이루는 분량이 오늘날과 달라 그냥 130권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오늘날 보통 책 크기(4*6배판/B5)로 만들더라도 약 11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연대별 서술의 단점을 보완하여 인물, 표 등을 함께 엮는 역사 서술 방식을 기전체라고 하는데, 사마천의 사기가 기전체로 씌여진 최초의 역사서입니다. 기전체는 본기의 ‘기’, 열전의 ‘전’을 따서 만든 것입니다. 연대별로 사건 발생 순서대로 기술한 편년체의 한계를 극복한 최초의 역사서인 셈입니다. 사마천은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130편의 주제를 간단히 기술하고 제목을 달아 놓았습니다.

이에 따르면, 〈본기〉는 오제(五帝)로부터 한무제에 이르기까지 제왕의 정치와 행적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것이고, 〈표〉는 각 시대에 대한 역사를 도표화한 것이며, 〈서〉는 일종의 문사나 제도사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여러 문물제도의 연혁과 변천을 적은 분류사입니다. 〈세가〉는 제왕보다 낮은 제후들의 가문의 내력과 사건, 전성과 몰락 과정을 시대순, 나라별로 기록한 열국사(列國史)이며, 〈열전〉은 개인의 전기로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의 전기로 사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기》의 백미는 생생한 인물을 담아 놓은 열전 편이 아닌가 합니다.

《사기》의 주요 특징을 보면, 이미 언급한 대로 기존의 편년체 기술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여 기전체라는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을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가급적 인용하지 않는 실사구시 태도로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 그 존재의 의문을 가졌던 삼황 시대를 기록하지 않았던 것.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대화체가 등장한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입니다. 대화란 그 자리에 배석하지 않으면 확인이 어려움에도 생동감 있는 서술을 위해 과감하게 대화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특징들이 있겠지만 이 정도로 정리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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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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