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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6-05-20 06:20:16, Hit : 8784, Vote : 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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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논어03] 하(夏)나라 이야기, 갑골문과 은허
중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 하(夏나)라

삼황오제의 씨족공동체 사회에서는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눠가졌습니다.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짓기도 했겠지만 그 양이 넘치지 않았습니다. 비슷하게 나눠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차차 분배에 격차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부족 간의 싸움에서 전공을 세운 사람은 전쟁 포로를 데려다 일을 시킵니다. 힘이 있는 자가 노동력까지 많이 가지게 되어 점차 빈부의 차가 생기게 됩니다. 이제 수장은 여러 사람이 억지로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명예직이 아닙니다. 수장이 되면 권력과 부를 가질 수 있어, 이 자리를 두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한 번 수장의 자리를 빼앗으면 남에게 주지 않고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줍니다. 씨족공동체의 기초가 무너지고 세습의 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중국 역사에서 우 임금 시기가 이에 해당됩니다.
기록으로 보면 우 임금이 백익이라는 사람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으나 백익이 이를 거절해서, 우 임금의 아들 계|啓|가 수령이 되었다고 합니다만 믿을 수 없습니다. 누구는 도망가도 끝까지 쫓아가서 빌고 빌어 임금이 되게 해놓고선, 우 임금이 차기 후계자로 지목한 백익에게는 그렇지 않았는지 이유가 불분명합니다.
점차 생산력이 발전하고 이에 따라 서로 나눠가지고도 남는 생산물, 즉 잉여 생산물이 생기게 되고, 부락의 수령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이 잉여생산물을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씨족공동체 사회가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권력의 집중과 분배의 불평등이 생긴 것입니다. 우의 아들 계가 왕위를 계승한 것도 바로 이런 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훗날 사람들이 그 때의 역사를 미화하기 위해 우 임금이 백익이라는 자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백익이 거절해서 하는 수없이 아들 계가 왕이 되었다는 식으로 썼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 임금은 성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좋은 사람에게 세습의 시조라는 불명예 딱지를 붙이기 싫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힘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다소 미약했었나 봅니다. 계가 왕이 되자 여러 부락에서 반발하여 크고 작은 싸움이 계속되었다는 기록만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계는 무력으로 반발 세력들을 물리치고 임금의 자리를 굳힙니다. 그 후로 임금의 자리는 세습되었고 그때마다 임금의 자리를 둘러싼 싸움은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원시 씨족공동체가 무너지고 세습이 되기 시작한 이 때, 즉 우의 뒤를 이어 계가 임금이 되어 다스렸던 부락 연맹을 중국 역사에서는 하|夏|나라라고 합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셈이고, 전쟁 포로 등의 노예가 힘든 일을 대신하던, 최초의 노예제 국가라고도 합니다.
우로부터 시작한 하 왕조는 17대 폭군 걸왕 때 멸망합니다. 역사에서 마지막 왕은 대개 무능하거나 폭군입니다. 그리고 폭군 곁에는 늘 임금의 총기를 흐리는 여자, 경국지색의 미녀들이 등장합니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나라를 기울어지게 만드는 미인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식의 결론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뼛조각이 중국 고대사의 비밀을 밝히다 (갑골문과 은허)

하나라에 대한 유적은 현재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전설 속의 나라입니다.
유적이 남아 있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는 상|商|입니다. 은|殷|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상나라 수도가 은이어서 그렇게 붙여진 것입니다.
상나라의 역사는 《사기》에도 나오는데, 그러나 사마천도 상나라가 망하고 1천 수백 년이나 지난 시대의 사람이니 그 내용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문자 기록은 있는데 아무런 유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결정적 증거가 발견됩니다. 바로 한약방 뼛조각 사건. 뼛조각 하나가 전설 속의 은나라를 역사로 끌어냅니다.

때는 1899년. 청일전쟁이 끝난 지 5년이 지난 때입니다. 국자감|國子監|의 장관 왕의영|王懿榮|에게 유악|劉?|이라는 비서가 있었습니다. 국자감이란 오늘날 국립대학에 해당되니까, 국자감 장관은 오늘날 서울대 총장쯤 됩니다. 왕의영은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는데, 당시 말라리아에 특효약으로 용골|龍骨|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용의 뼈라고 하니 이름은 참 거창한데 별로 비싼 약재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갈아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어느날 왕의영의 집 하인이 그 용골을 구해 왔는데, 마침 그 때 유약이 있었습니다. 유약은 도대체 무슨 약인가 싶어 그 뼈를 살펴봤는데, 거기에 무슨 문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유약은 그것을 왕의영에게 가져가고, 두 사람 모두 금석학|金石學|에 조예가 깊은 터라 곧 연구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전설 속의 상나라를 역사로 끌어낸 갑골문|胛骨文|이 세상에 알려진 사건입니다.
이런 갑골문이 대량 발견된 곳은 상나라의 수도 은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곳을 은허|殷墟|라고 합니다. 갑골이란 귀갑수골|龜甲獸骨|이란 뜻인데, 거북이 껍질과 동물 뼈라는 뜻입니다. 거북이 배나 등의 껍데기와 동물 뼈에 기록된 문자라고 해서 갑골문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주말 편히 보내시고 다음 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민수기
중국역사를 공부하고 싶어집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2006/05/21 10:30:54   

김서진
다음 시간이 기대됩니다. 그런데 이거 매일 쓰시는 건가요? 도대체 언제? 갑자기 제 생활이 부끄러워질라고 그러네요.  2006/05/21 19:16:35   

말라리아 특효약이 거북이 껍데기였다니. 갑자기 한약에 대한 믿음이 사라집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06/05/21 20:13:28   

손병목
격력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연재를 이어야하는데, 갑작스런 사건으로 업데이트할 짬을 낼 수가 없네요. 내일도 가능할른지...
 2006/05/22 21:42:51    

김동기
주역을 얘기하시는 곳에서 갑골을 귀갑우골이라 하시더니 여기선 귀갑수골이라 하니 헷갈리는군요... 수골이 맞지 않나 생각은 합니다만...  2006/09/12 13:54:00   

손병목
헷갈릴 수 있겠습니다만 귀갑수골, 귀갑우골 모두 맞는 표현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수골은 짐승의 뼈를, 우골은 소의 뼈를 말하는데,
발견된 갑골 중 짐승의 뼈는 대부분이 소뼈였으므로
귀갑우골이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사전에 따라 귀갑우골 또는 귀갑수골이라 다르게 칭하거나, 어떤 사전에는 둘 다 표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06/09/12 18: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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