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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6-07-05 09:33:23, Hit : 8678, Vote : 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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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12] 지워진 고자의 말 채워 넣기(1)
지워진 고자의 말 채워 넣기

대화 내용으로 봐서는 세 편이 대화가 모두 맹자의 판정승입니다. 확실히 맹자의 말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게다가 맹자의 말로 대화가 끝나기 때문에 마치 맹자의 말이 결론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고자의 반론이 없었을까요? 흔히 <맹자>를 읽고 나면 고자는 맹자에게 완벽하게 논박당한 인물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편견을 버리고 꼼꼼히 읽은 후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본다면 고자의 말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결코 맹자에게 맞아만 주는 하급 스파링 파트너가 아니었습니다. 설사 그가 맹자를 위한 스파링 파트너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그는 맹자에 버금가는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이제 고자의 말에 담긴 깊은 철학적 의미를 끌어내보겠습니다. 맹자의 결론 뒤에 있었을 법한 고자의 말을 되살려보겠습니다.

위 세 편의 대화는 각각 다른 시기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순서대로 함께 묶어서 한 번에 이루어진 것으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연속적으로 독해하는 것이 두 사람의 대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훨씬 수월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세 대화 전체를 한 편으로 보고 두 사람의 말에 담긴 의미와 논리를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맹자가 내린 결론을 다시 보겠습니다. 버드나무 논쟁에서 맹자는, 버드나무에 비록 인위적인 노력을 덧보태기는 했지만 버드나무의 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공을 하여 나무술잔을 만들 수 있듯이, 사람도 그 타고난 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육을 한다면 어질고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물과의 비유에서는, 물이 자연스레 아래로 흐르듯 사람이 선하려는 경향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부모에게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도 모두 본성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운 마음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맹자는, 본성이란 다른 동식물과 인간을 구분해주는 고유한 특징이라고 정의합니다. 사람은 개나 소나 모두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점에서는 같지만, 그렇다고 사람이나 개나 인간의 본성이 모두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위의 세 편의 대화는 순서를 거꾸로 배치해야 논리적으로 자연스럽습니다. 본성이 무엇인지 먼저 정의를 내리고, 본성과 인위적인 노력의 관계를 설명하는 순서라야 맞습니다.

고자의 주장을 거꾸로 엮어 보면 이렇습니다.

① 사람이 본래 타고난 모습이 본성이다. → ② 고여 있는 물은 어느 쪽이든 터주는 방향으로 흐르듯이 사람의 마음이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다. → ③ 마치 버드나무를 깎아서 나무술잔을 만들 수도 있고 나무 몽둥이를 만들 수 있듯이. 나무술잔을 버드나무에 인위적인 가공을 해서 만들었듯이, 인의|仁義|라는 것도 사람의 본성에 인위적인 노력(교육)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인의|仁義| 그것 자체는 본성이 아니다.

맹자의 주장도 거꾸로 엮어 볼까요.

① 본성이란 다른 그 무엇과 구분되는 성질을 말하는 것이다. → ②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본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 ③ 버드나무의 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공을 해야 술잔이 된다. 억지로 가공해서는 나무술잔을 만들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인의|仁義|는 매우 자연스러운 덕목이다. 억지로 가르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개나 소처럼.

이렇게 보면 고자의 말이 더 논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물’이라는 비유도 참으로 적절합니다. 본성은 타고는 그대로의 모습인데, 그것은 마치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아서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냥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고여 있으되 소용돌이치는 물에 비유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맹자는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것이 본성이라고 하면서도 인간의 인위적인 개입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본성이라는 말을 다른 동식물과 구분되는 그 무엇으로 정의한다면, 인간만이 인간에게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개입(교육)조차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위 대화에 나타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왜 하필 ‘인의|仁義|’인지에 대한 설명을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버드나무를 깎아 전쟁에 쓰이는 창을 만들 수도 있고, 농사짓는 삽자루를 만들 수도 있는데 왜 꼭 나무술잔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맹자의 말이 비록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위대한 사상가의 논리치고는 참 엉성해 보입니다. <정글북>의 모굴리처럼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날 때 동물과 함께 자라면 우리가 흔히 아는 인간적인 속성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그런 사례도 있습니다.

맹자에 비하면 훗날 맹자를 비판하며 성악설을 말한 순자의 주장이 더 타당해보입니다. 순자는 인간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이미 인위가 개입된 것이라 인정합니다.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거칠고 조야하다’고 표현합니다. 거칠고 조야한 본성에 인위적인 노력을 가해 인간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순자는 본성|性|과 인위적인 노력|僞|을 확실하게 구분하였습니다. 인위적인 노력, 때로는 자기 극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인간이 아름다워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극복을 거친 후의 아름다움은 그 전의 거칠고 조야한 상태와 질적으로 다릅니다. 결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닙니다.

(얘기가 많이 길어지네요... 내일 또...)

버드나무
책에서 고자, 맹자 버드나무 논쟁부분을 공부하면서 잘 이해가 안되어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이렇게 정리가 잘된 포스트를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8/21 08: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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