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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6-05-24 06:20:52, Hit : 11454, Vote :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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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04] 상나라, 주나라 건국 이야기
며칠 동안 정신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별일이 없기를 바라며, 《논어》 이야기, 계속 이어집니다.

중국 최초의 혁명가 - 탕 (상나라 건국 이야기)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상|商|나라와 그 뒤를 잇는 주|周|나라 건국 이야기는 동양 고전을 이해하는 데 필수입니다.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치러가는 길에 백이와 숙제가 가로막았지만 끝내 막을 수 없어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죽은 것은 이미 예전 《사기》를 리뷰할 때 살펴봤습니다. 주역|周易|은 주나라 때 완성되었습니다. 공자는 입만 벙긋하면 주례|周禮|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주나라 때의 예의가 통하던 그 시절이란 뜻입니다. 과장을 좀 하자면, 동양 고전에 상과 주의 이야기를 빼면 거의 남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은 걸왕입니다. 상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과 더불어 폭군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두 사람을 합쳐 걸주|桀紂|라고 합니다. 요순|堯舜|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니, 그들이 정말 인간 이하의 폭군이었다고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폭군이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 나서서 정벌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는 논리는 역사를 보면 지겹게 반복되는 레퍼토리입니다.
어쨌든 하나라를 치고 새롭게 중원의 강자가 된 나라는 상나라입니다. 이 때의 왕이 탕왕이었고 그 곁에는 명재상 이윤이 있었습니다. 이윤은 노예 출신이지만 탕왕의 눈에 들어 일국 최대의 재상이 되었고, 이후 몇 대에 걸쳐 왕을 보필했습니다.
탕왕이 죽고 그 뒤를 이은 왕 태갑은 어릴 적부터 왕궁에서 잘 먹고 잘 살아서인지 왕위에 오르자마자 방탕한 생활에 빠집니다. 정사는 돌보지도 않습니다. 이윤은, 이러다가 하나라 걸왕 꼴이 되겠다 싶어, 왕을 감금합니다. 이를테면 가택 연금 상태. 천자를 가택 연금시켜 놓고 이윤이 모든 나랏일을 맡아 봅니다. 이 정도면 뭔가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뭔가 뒤집어 지는 일이 일어날 것처럼 예상이 되는데, 드라마틱하게도 태갑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 개과천선하게 됩니다. 태갑이 확실히 달라졌음을 확인하고 이윤은 그를 다시 천자에 오르게 합니다. 이윤은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세월은 흘러 상나라도 부침을 거듭하며 천도를 다섯 번이나 합니다. 천도는 수도를 옮기는 일입니다. 정말로 엄청난 일입니다. 지금도 서울을 옮기려면 온 나라가 들끓는데, 당시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지역주의가 강했습니다. 혈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친 사회였는데, 수도를 옮긴다는 것은 혁명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천도가 잦았다는 것은 그만큼 상나라의 역사가 순탄치 않았다는 방증입니다.
그러다가 제20대 왕 반경|盤庚|이 수도를 은|殷|으로 옮깁니다. 그 이후 약 2백 년이 넘도록, 상나라가 망할 때까지 지속됩니다. 갑골문이 발견된 은허는 바로 이곳입니다.

탕왕이 하나라를 칠 때의 자세한 이야기는 《상서|尙書|》에 나와 있습니다. 《상서》는 훗날 사서삼경의 하나인 《서경|書經|》불리기도 합니다.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라를 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하나라를 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가 부패하여 ‘하늘|天|’이 나로 하여금 그들을 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웃기죠? 전혀 증명할 길이 없는 ‘하늘의 뜻’. 얼마나 명분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부시가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백성들도 바보가 아니어서, 하나라가 우리에게 별 해를 끼치지도 않는데 왜 농사까지 내팽개치고 그들을 정벌하냐고 합니다. 그러자 탕왕은 말합니다. 걸왕이 너무나 흉포해서 하나라 백성이 하루라도 빨리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말. 나를 도우면 큰 상을 내리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처자식까지 모두 죽여버릴 것이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어쩌겠습니까? 백성들은 돌도끼와 돌창, 돌화살을 들고 하나라도 쳐들어가서 던지고 때리고 하면서 하나라를 피바다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 때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걸친 시기니 주된 무기는 돌도끼나 돌창 등이었을 겁니다. 흔히 사극에서 볼 수 있는 쇠로 만든 칼이나 창 따위는 없었을 것입니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은 주왕|紂王|입니다. 앞서 말한 폭군의 대명사인데, 조금 의심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하나라 마지막 왕인 걸왕과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마치 쌍둥이 같습니다.
하나라 걸은 유시씨를 토벌하여 말희라는 미녀를 얻었습니다. 상나라 주는 유소씨를 토벌하고 미녀 달기를 얻었습니다. 둘 다 이 미녀에게 푹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망합니다. 걸은 상나라 탕왕에게 주는 주나라 무왕에게. 그런데 걸은 탕을 잡았다가 놓아준 적이 있고, 주도 주나라의 문왕(무왕의 아버지)을 잡았다가 놓아준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비슷해서 둘 중 하나는 분명 지어낸 얘기인 것 같습니다. 은허에서 발굴된 갑골문을 아무리 분석해봐도 달기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강태공,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세우다 (주나라 건국 이야기)

상나라가 중원 정권이라면 지방 정권 중에 주나라가 있었습니다. 지방 정권인 주나라가 부족 연맹의 수령이 다스리는 부족을 쳐서 중원 지역을 통일합니다. 상나라가 하나라를 칠 때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국의 역사를 볼 때 주의해야 할 것은, 하 → 상 → 주 → 춘추전국시대 → 진 → 한 등과 같이 왕조가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금이야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단일 체제에 거대하게 묶인 나라가 되었지만, 고대에는 지금과 같이 강력한 중앙집권이 불가능했습니다. 하나라가 있을 때 주변에 여러 부족들이 있었고 그 중에 상나라도 있었습니다. 이 상나라가 중원의 하나라를 쳐서 그 대표가 된 것입니다. 물론 이 때도 상나라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범위가 더 컸습니다. 상나라 때도 지금의 중국 땅에 상나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 많은 부족 또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주나라입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 때부터는 비교적 강한 통일제국을 만들지만, 그래도 오늘날과 같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로 봐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섬서성 부근의 고원지방에 농경민족인 주|周| 부족이 있었습니다. 이 부족의 시조는 후직이라고 하는데, 요순 시대에 농사를 담당했다는 신화 속의 인물입니다. 후직으로부터 시작한 주 부족은 이후 고공단보 때에 이르러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피해 기산 기슭에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고공단보는 조카 서백 창|西伯昌|에게 수령 자리를 물려주었고, 창은 훗날 강태공을 만나 상나라의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게 됩니다. 창이 죽고 그 뒤를 무왕이 이었는데, 무왕은 강태공의 도움에 힘입어 상국인 상나라를 물리칩니다. 이것이 주나라입니다. 무왕의 아버지 창은 문왕으로 불리게 됩니다.
동양고전을 읽다보면 귀에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난무하는데 너무 신경 안 쓰는 게 좋습니다. 핵심적인 몇 사람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주나라 건국과 관련해서는 강태공과 무왕 정도만 기억해도 됩니다.

상나라에 명재상 이윤이 있었다면, 주나라에는 강태공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낚시꾼 강태공, 바로 그 사람입니다. 본명은 강상|姜商|입니다.
문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한 노인이 강가에서 낚시를 하던 노인을 발견하고 대화를 나눠보니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문왕의 할아버지 때부터 주 부족을 강성하게 키울 인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터라, 그를 태공망|太公望|이라고 불렀습니다. 태공|太公|은 왕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뜻하는데, 할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민간에서는 그냥 태공이라고 불렀고, 성을 붙여서 강태공이라 불렀습니다.
문왕이 죽고 무왕은 강태공을 최고 참모로 해서 상나라를 치러 갑니다. 그런데 겁도 없이 이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으니, 너무나 유명한 《사기》〈백이열전〉의 주인공 백이와 숙제입니다.

무왕이 나라를 세웠지만 아직 기반이 튼튼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무왕이 2년 만에 죽었는데, 그의 아들 성왕은 겨우 열세 살이었습니다. 무왕의 동생인 주공 단이 천자를 대신해 정사를 다스렸습니다. 이 혼란한 틈을 타 동쪽 땅 몇몇 부락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강태공이 나서서 이를 모두 진압했습니다. 이들은 대개가 주나라 조정을 인정하지 않는 옛 상나라의 귀족들이었습니다. 주공 단은 이들이 또 난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생각해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땅에 새 도성을 만들어 조정에 반대하는 자들을 모두 이주시켰습니다. 물론 군사를 풀어 감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도성이 낙읍|洛邑|인데, 이로써 주나라는 도성이 두 개가 되었습니다.
주공 단이 어린 왕을 보필해 집정한 7년 동안 주나라 조정의 기틀을 잡고, 여러 법률과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성왕이 스무살이 되자 주공 단은 모든 권력을 넘겨줬습니다. 공자는 이 주공 단을 매우 우러러보았으며, 주공 단은 이후 유교 학자들에 의해 성인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내일, 계속됩니다...)

김서진
역사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습니다. 사람 이름이 좀 많은 것 빼고는요 -.^
 2006/05/24 09:08:05   

손병목
감사합니다^^
처음에 생소하던 사람 이름도 자꾸 보다보면 무척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2006/05/26 11:10:10    

멍처미
고전은 딱딱한데 정말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2013/02/07 1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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