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2–2009

손병목의 독서노트

셰익스피어의 《햄릿》

이런 고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워낙 많이 읽힌 작품이고 연구와 학습의 대상이기도 하여 쟁쟁한 평론가들의 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새로운 해설서를 쓴 고병권의 글 중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정신의 역사가가 아닌 나는 과거의 책에 큰 관심이 없다. 나는 어떤 책이 미래의 책이 될 수 없다면 최소한 현재의 책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과거의 책에는 관심이 없다'는 그 말에 용기와 희망을 얻었습니다. 낡은 곰팡이 냄새가 나는 창고 속의 책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의 눈과 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책을 읽고 - 즉 고전이고 명작이라는 권위적 냄새를 걷어버리고,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만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제   목 : 햄릿
   지은이 : 셰익스피어 / 최종철 옮김
   펴낸곳 : 민음사 (초판 출간일 1998.8.5) ₩6,000

《햄릿》은 일단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 같지만, 시종일관 슬프고, 마지막을 향해갈수록 전율이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상황이 비록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시대와 역사적 환경을 넘어서 느껴지는 감동이 있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열어 감정이입을 할 용기가 있다면 책 읽는 내내 주인공 햄릿에 흠뻑 빠져들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미친 척하지만, 미친 척하며 내뱉는 그 모든 말과 행동이 사실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왕과 왕비, 신하들, 그리고 그의 친구와 사랑했던 여인까지 모두 그에게는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회의의 대상입니다.
살다보면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깨끗함과 추악함을 판단하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정작 어느 순간에 우리는 그 판단을 아주 쉽게 내립니다. 마치 마음만 먹으면 그의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었던 많은 순간을 그냥 보내버리고, 정작 다른 사람을 왕이라 오인하고 가차없이 찔러 죽이는 햄릿의 행동처럼. 이분법적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햄릿의 행동에서 가장 '인간적'인 무언가를 느끼게 됩니다. 햄릿의 마음에 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햄릿이 레어티즈에게 말합니다.
"햄릿이 레어티즈에게 잘못해? 햄릿은 절대 아냐. 햄릿이 자기 자신과 분리되어 자기가 아닐 때 레어티즈에게 잘못하면, 그건 햄릿 짓이 아니라고. 햄릿은 그걸 부인하네. 그럼 누가 했지? 그의 광기야. 그렇다면 햄릿은 피해를 입은 쪽에 속한 거지. 그의 광기가 불쌍한 햄릿의 적이야."

마치 남의 얘기하듯 자신의 얘기를 하는 이 상황, 장자의 '호접지몽'을 보는 듯하기도 하고, 니체의 끊임 없는 자기 변신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이며,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며 죽는다는 건 또 무엇이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꺼림칙한 상황에 햄릿과 레어티즈의 펜싱 시합을 막으려는 호레이쇼에게 햄릿은 말합니다.
"누구도 자기가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지 모르는데, 일찍 떠나는 게 어떻단 말인가? 순리를 따라야지."
그 순리라는 게 무엇일까요?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 조카인 햄릿마저 제거하려 하는 왕과, 그런 왕을 죽이려한 햄릿, 햄릿에 의해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한 레어티즈도, 모두 함께 죽어갑니다. 그들 모두는 애초의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죽이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을 죽였으니까요. 그러나 자기 자신도 죽고... 모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기막힌 설정. 이 부분에서 섬뜩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천재였을까, 아니면 혹시 그냥 비극적으로 쓰다보니 이렇게 된 것일까.
꿈을 꾸는 것도 자유이지만, 남의 꿈을 해몽하는 것도 자유이니 어느 쪽인들 어떻겠습니까. 400년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내는 수밖에요.

*
《햄릿》 줄거리 요약

  • 1막 1-2장

    덴마크의 엘시노어 성벽에 매일 밤 자정마다 죽은 선왕의 망령이 나타난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긴 보초병들은 햄릿에게 이 사실을 고한다. 선왕이 죽은 뒤 왕비이자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는 현재 덴마크의 왕이며 선왕의 동생(=햄릿의 삼촌)인 크로디어스와 재혼한다. 어머니의 재혼을 경멸하던 햄릿은 보초병의 얘기를 듣고 유령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한다.

  • 1막 3장

    햄릿은 재상 폴로니어스의 딸인 오필리아를 좋아한다. 그러나 폴로니어스는 딸에게 햄릿과의 교제를 단속한다.

  • 1막 4-5장

    햄릿이 엘시노어 성벽을 찾아간다. 자정이 되자 정말 선왕 모습의 유령이 나타난다. 햄릿은 그로부터 자신이 동생에게 살해되었다며 햄릿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햄릿은 충격을 받는다.

  • 2막 1-2장

    아버지가 죽은 후 늘 우울해 있던 햄릿은 아버지 유령의 얘기를 듣고 미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햄릿은 자신의 결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미친 척하기 시작한다. 미친 척하는 것인지 정말 미친 것인지 읽는 이로서도 분간이 가지 않는다. 햄릿은 유령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그와 비슷한 상황을 직접 연출하여 왕 앞에서 연극을 하도록 만든다.


  • 3막 1-4장

    햄릿의 광기가 오필리아에 대한 상사병 탓이라고 생각한 왕은 오필리아와 햄릿의 교제를 자유롭게 하도록 꾸민다. 그러나 햄릿은 오필리아 냉담하게 대하며 차라리 수녀원으로 가라고 한다.
    왕 앞에서 햄릿이 기획 연출한 연극이 상연된다. 상연 중 왕은 연극을 멈추라고 지시한다. 햄릿은 현왕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확신을 갖는다.
    햄릿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왕은 그를 외국으로 내쫓으려 한다. 왕비는 무례한 햄릿을 꾸짖기 위해 그를 부른다. 그러나 오히려 왕비가 햄릿의 말을 듣고 크게 반성하게 된다.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폴로니어스는 햄릿의 칼에 죽는다. 햄릿이 아마 현왕이라고 착각한 것 같다.

  • 4막 1-4장

    왕은 햄릿의 살인을 핑계삼아 그를 영국으로 보낸다. 햄릿을 살해하라는 비밀문서와 함께. 그러나 그 문서는 햄릿에 의해 발각되고, 마침 중도에 해적을 만나 덴마크로 다시 돌아온다.

  • 4막 5-7장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오필리아는 미친다. 그리고 물에 빠져 죽는다. 오빠 레어티즈는 왕에게 복수하려 하다가 햄릿이 그랬다는 말을 듣고 왕과 함께 햄릿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레어티즈와 펜싱 시합을 유도하고, 그 때 레어티즈가 독이 묻은 칼로 햄릿을 죽인다는 내용. 독이 든 포도주도 함께 준비한다.

  • 5막 1-2장

    왕이 보는 앞에서 레어티즈와 햄릿은 화해의 의미로 펜싱 시합을 한다. 도중 햄릿은 레어티즈의 독이 묻은 칼에 상처를 입는다. 햄릿을 죽이기 위해 준비한 독주를 왕비가 모르고 마신고 즉사한다. 레어티즈는 햄릿보다 더 큰 상처를 입고 쓰러진다. 죽기 전 그는 햄릿에게 왕의 모든 흉계를 털어 놓는다. 햄릿은 독이 묻은 칼로 왕을 찌른다. 햄릿은 죽으면서 친구 호레이쇼에게 모든 일을 널리 알리도록 부탁한다.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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