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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적대적 공범자들》
고백하건데 이 책을 정독하지 못했습니다. 두툼한 분량이나 시간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국어사전과 영어사전, 백과사전을 곁에 두고 읽어야 할 만큼 생소하고 뻣뻣한 어휘와 이오덕 선생이 보셨다면 버럭 화를 내셨을 번역투의 문장이 마지막까지 책 읽기를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문 역사학도가 아닌 제가 이 책을 정독하기에는 힘에 부칠만큼 현학적으로 느껴지는 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지적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대중을 위한 글쓰기가 이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히려 요즘 많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그의 시선 - 민족주의나 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주의에 관한 그의 주장에는 별 다른 이견이 없었습니다. 혈통/종족 민족주의의 오류와 폐단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식해오던 터였습니다. 국사國史 해체를 주장하는 그의 의견에도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국사 인식에 인이 박여서인지 해체 후의 허전함을 채워 줄 그 무엇이 없어 여전히 뒤끝이 개운치 않습니다.
제 목 : 적대적 공범자들
지은이 : 임지현
펴낸곳 : 소나무 (초판 출간일 2005.1.10 |초판 1쇄를 읽음) ₩15,000
《적대적 공범자들》-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이미 임 교수의 다른 책들이나 매체를 통해 임 교수의 주장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일반인에게는 매우 생소한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개념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현상적으로는 서로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 간의 동맹 관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그 예를 부시와 빈 라덴, 박정희와 김일성, 나아가 한·중·일 간의 민족주의 역시 그러하다고 지적합니다.
"9·11 테러의 진정한 승자는 미국의 국가 권력과 탈레반 민족주의이며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이나 아프간의 죄 없는 민중들이나 패자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자신의 시민적 권리와 복지를 자발적으로 유보했고, 탈레반 민족주의의 반동 아래 신음하던 아프간의 민중들은 다시 미군의 폭격 아래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야 하는 현실을 보면 분명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아니 이 정도로 대충 인정하기보다는, 그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단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적대감이 이들의 동맹 관계를 은폐했을 뿐입니다. 미국 대선 직전에 빈 라덴의 등장으로 인해 그 사실 관계가 명확해졌습니다. 이와 같은 은폐된 동맹 관계를 저자는 '적대적 공범 관계'라고 규정합니다.
저자는 나아가 일본의 제국적 민족주의나 이에 대항하는 우리의 저항적 민족주의 역시 '적대적 공범 관계'에 있다고 규정합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가 자기완결적 논리 구조를 갖지 못하고 여타의 사회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나타나는데, 역사는 민족과 민중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국가 권력에 의해 민족주의가 이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대개의 사람들은,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오히려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합니다. 이에 대해 임 교수의 생각은 명쾌합니다. 그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적은 '게임의 규칙'을 뒤엎는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제국이 되기를 원하면서 앞서간 제국을 비판하는 민족주의적 비판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저항 민족주의를 자동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저항 민족주의에 대한 지지가 제국주의를 반사적으로 비판한다는 발상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게임의 규칙'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논란의 여지가 되는 주장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논란의 여지라는 부정적 표현보다는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긍정적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친일파 청산에 대해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주교가 이끄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모델을 본받자고 합니다. 한 줌도 안 되는 친일파의 청산보다는 범죄 행위자들의 고백과 참회를 통해 사건을 진상을 밝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서도 기존의 시각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고구려가 어째서 한국사냐고 반문합니다. 고작해야 100여 년 전에 생긴 민족의 개념으로 2000년 전의 역사를 민족의 개념에 포함시키기 위한 엉뚱한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는 한국도 중국도 없었으며, 그저 '고구려'였을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작금에 고구려를 두고 서로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사國史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국사 자체가 국가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사의 역사 서술은 거꾸로 서술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즉 현재의 대한민국을 두고, 거꾸로 일제시대, 조선시대, 고려시대....그리고 단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현재 국가의 정통성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고구려사는 누구의 역사인가? 이에 대해 임 교수는 변경사Border history라는 개념을 제안합니다. 즉 하나의 국민이나 민족 국가의 단위에 넣지 말고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장을 의미하는 변경사로 바라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일관된 주장의 결론은 국사 해체에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한계가 많음을 인정합니다. 해체한 다음의 대안에 대해서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제부터 만들자고 말합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하였지만, 대단히 파격적일 것이라는 기대로 이 책을 샀으나 결론적으로 그리 파격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이차적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는 그 자체보다는 언제, 왜, 그러고 어떻게 다른 사회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 또한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고구려사에 대한 논쟁 역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사례에서 보듯이 서로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고구려가, 혹은 발해가 정말 '우리'의 역사인지에 대한 제 오랜 의문은, 이를 '변경사'의 관점에서 이해해야한다는 임 교수의 주장으로 명쾌해졌습니다.
다만 서양사를 전공하고 끊임없이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보려하는 그 시선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수긍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임 교수 스스로 '정신적 망명자'라고 정의했듯이, 내 고향을 타향으로 보는 그의 눈을 통해서 '우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실천을 규정하는 것이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인식된 현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실을 인식하는 틀이 바뀔 때 실천의 방식이 달라지고, 그것이 다시 현실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임지현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양 사상사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야기에워 대학, 크라쿠프 사범대학 등에서 연구하고 강의했다. 1999년부터 영국 포츠머스 대학 소재 연구 집단인 '유럽의 민족주의와 민족적 정체성'의 연구 펠로우로 활동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당대비평』, 『역사와 문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르크스엥겔스와 민족 문제』, 『서양의 지적 운동』(공저),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그대들의 자유, 우리들의 자유-폴란드 민족해방운동사』, 『우리 안의 파시즘』 등이 있다.
오히려 요즘 많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그의 시선 - 민족주의나 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주의에 관한 그의 주장에는 별 다른 이견이 없었습니다. 혈통/종족 민족주의의 오류와 폐단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식해오던 터였습니다. 국사國史 해체를 주장하는 그의 의견에도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국사 인식에 인이 박여서인지 해체 후의 허전함을 채워 줄 그 무엇이 없어 여전히 뒤끝이 개운치 않습니다.
제 목 : 적대적 공범자들
지은이 : 임지현
펴낸곳 : 소나무 (초판 출간일 2005.1.10 |초판 1쇄를 읽음) ₩15,000
《적대적 공범자들》-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이미 임 교수의 다른 책들이나 매체를 통해 임 교수의 주장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일반인에게는 매우 생소한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개념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현상적으로는 서로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 간의 동맹 관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그 예를 부시와 빈 라덴, 박정희와 김일성, 나아가 한·중·일 간의 민족주의 역시 그러하다고 지적합니다. "9·11 테러의 진정한 승자는 미국의 국가 권력과 탈레반 민족주의이며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이나 아프간의 죄 없는 민중들이나 패자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자신의 시민적 권리와 복지를 자발적으로 유보했고, 탈레반 민족주의의 반동 아래 신음하던 아프간의 민중들은 다시 미군의 폭격 아래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야 하는 현실을 보면 분명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아니 이 정도로 대충 인정하기보다는, 그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단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적대감이 이들의 동맹 관계를 은폐했을 뿐입니다. 미국 대선 직전에 빈 라덴의 등장으로 인해 그 사실 관계가 명확해졌습니다. 이와 같은 은폐된 동맹 관계를 저자는 '적대적 공범 관계'라고 규정합니다.
저자는 나아가 일본의 제국적 민족주의나 이에 대항하는 우리의 저항적 민족주의 역시 '적대적 공범 관계'에 있다고 규정합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가 자기완결적 논리 구조를 갖지 못하고 여타의 사회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나타나는데, 역사는 민족과 민중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국가 권력에 의해 민족주의가 이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대개의 사람들은,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오히려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합니다. 이에 대해 임 교수의 생각은 명쾌합니다. 그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적은 '게임의 규칙'을 뒤엎는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제국이 되기를 원하면서 앞서간 제국을 비판하는 민족주의적 비판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저항 민족주의를 자동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저항 민족주의에 대한 지지가 제국주의를 반사적으로 비판한다는 발상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게임의 규칙'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논란의 여지가 되는 주장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논란의 여지라는 부정적 표현보다는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긍정적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친일파 청산에 대해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주교가 이끄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모델을 본받자고 합니다. 한 줌도 안 되는 친일파의 청산보다는 범죄 행위자들의 고백과 참회를 통해 사건을 진상을 밝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서도 기존의 시각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고구려가 어째서 한국사냐고 반문합니다. 고작해야 100여 년 전에 생긴 민족의 개념으로 2000년 전의 역사를 민족의 개념에 포함시키기 위한 엉뚱한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는 한국도 중국도 없었으며, 그저 '고구려'였을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작금에 고구려를 두고 서로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사國史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국사 자체가 국가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사의 역사 서술은 거꾸로 서술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즉 현재의 대한민국을 두고, 거꾸로 일제시대, 조선시대, 고려시대....그리고 단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현재 국가의 정통성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고구려사는 누구의 역사인가? 이에 대해 임 교수는 변경사Border history라는 개념을 제안합니다. 즉 하나의 국민이나 민족 국가의 단위에 넣지 말고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장을 의미하는 변경사로 바라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일관된 주장의 결론은 국사 해체에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한계가 많음을 인정합니다. 해체한 다음의 대안에 대해서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제부터 만들자고 말합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하였지만, 대단히 파격적일 것이라는 기대로 이 책을 샀으나 결론적으로 그리 파격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이차적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는 그 자체보다는 언제, 왜, 그러고 어떻게 다른 사회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 또한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고구려사에 대한 논쟁 역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사례에서 보듯이 서로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고구려가, 혹은 발해가 정말 '우리'의 역사인지에 대한 제 오랜 의문은, 이를 '변경사'의 관점에서 이해해야한다는 임 교수의 주장으로 명쾌해졌습니다.
다만 서양사를 전공하고 끊임없이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보려하는 그 시선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수긍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임 교수 스스로 '정신적 망명자'라고 정의했듯이, 내 고향을 타향으로 보는 그의 눈을 통해서 '우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실천을 규정하는 것이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인식된 현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실을 인식하는 틀이 바뀔 때 실천의 방식이 달라지고, 그것이 다시 현실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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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양 사상사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야기에워 대학, 크라쿠프 사범대학 등에서 연구하고 강의했다. 1999년부터 영국 포츠머스 대학 소재 연구 집단인 '유럽의 민족주의와 민족적 정체성'의 연구 펠로우로 활동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당대비평』, 『역사와 문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르크스엥겔스와 민족 문제』, 『서양의 지적 운동』(공저),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그대들의 자유, 우리들의 자유-폴란드 민족해방운동사』, 『우리 안의 파시즘』 등이 있다.
부록

댓글 3
그런데 말이다. 고교 때와 전혀 다른 세계관과 역사관을 접하며 혹은 당혹스럽고 혹은 경탄해 마지 않던 대학 초년시절을 떠올려보면 이런 동의조차 전혀 낯선 것이 아닌 건 분명하다. 그러면서 새삼 확인하는 것은, 그간 나의 역사관이라는 건 대체 무엇(어떤 내용)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거다.
적어도 책 한권에 곧바로 무장해제 당할 정도로 형편없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하면서.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임 교수의 주장에 섣불리 논박하거나 반론을 개진할 자신이 없다.
그게 내 고민의 내용이었다. 허위의 역사인식. 내용없는 역사관. 소시민적 센티멘탈리즘.
빌어먹을 역시 공부하는 것은 체계와 깊이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을...그간 나는 대체 뭘함 살았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