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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목의 독서노트

한홍구의 《대한민국史 1》

<한겨레 21>을 통해 간간이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를 본 적이 있으나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일간지든 주간지든 거기서 본 기사들은 마치 일회성인 듯 하여 마음 속에 간직하기 힘들었습니다. 마침 이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를 모두 묶은 책이 있어 읽어봤습니다. 나온 지는 꽤 되었는데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제   목 : 대한민국史 1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지은이 : 한홍구
   펴낸곳 : 한겨레신문사 (초판 출간일 2003.2.7 |2005.1.7일刊 초판 10쇄를 읽음) ₩11,000

<대한민국史 2>를 읽고 있는 지금, 1권에 대해 '뭔가'를 쓰려하는데 도대체 어떤 말부터 꺼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사건을 연대기로 구성한 것도 아니고, 또한 실제 제목에서처럼 단군에서부터 김두한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모두 다룬 것도 아닙니다.
이 책은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1권의 부제가 <단군에서 김두한까지>라고 되어 있는데, 실상 고대 중세사를 다루고 있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단군에 대한 꼭지가 하나 있긴 있는데 '단일 민족의 허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나머지 스물 다섯 꼭지는 모두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 같이 쉽게 얘기하고 넘어갈 주제가 아닙니다. 이런 표현이 올바른지 모르겠으나, 모든 주제가 하나 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한' 주제입니다.
외세에 의한 태극기 탄생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다룬 <태극기는 정말 민족의 상징인가>, 일재 잔재 청산을 다룬 <'친일파'에 대한 명상>, 똥과 된장만큼이나 다른 수구와 보수의 차이를 얘기한 <'참된 보수'를 아십니까>,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의 민간인 학살을 정면으로 다룬 <우리는 무덤 위에 서 있다>, 광화문 촛불 시위를 통해 본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어떻게 시작되고 유지되었는지를 다룬 <찬란한 '병영국가'의 탄생> 등 스물 여섯가지의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역사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막힘 없이 쉽게 읽힙니다. 내용이 가볍지 아니하고 쉽게 풀 수 없는 주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잡지 기사를 보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실제 잡지에 연재된 것이긴 하지만요).
그러나 부끄러운 우리의 근현대사를 쉽게 읽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한결 같이 '입바른 소리'를 하는 한교수가 밉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어떤 독자는 "시궁창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라고 항의 편지를 보냈다는데 충분히 그럴 법 합니다. 대한민국에 '정통성'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인지, 전후 문맥과 관련 근거를 봤을 때 사실(fact)임이 분명한데도 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왔는지 자조自嘲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한교수가 2권의 머릿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습니다. "(...)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는 김수영의 절창絶唱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 누구의 역사도 아닌 바로 '우리'의 역사인데 그 누군들 그것이 '더러운 역사'라고 말하면서 기분 좋아 할 리는 만무할 것입니다. 때문에 이 책의 저자 한교수는 그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그러하기 때문에 부끄러운 사실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놓고 반성하는 것이리라 저는 믿습니다. 정통성이 없으니 오로지 '새것'만 찾고 '개발'만 외치는 뿌리없는 자칭 보수주의자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말입니다.

보수라는 말이 나왔으니 그것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수구란 원래 보수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뜻입니다. 반동(reaction)은 보수와는 다른 하나의 역사적 개념일 수는 있으나 수구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한영사전을 찾아봐도 수구는 보수와 같이 'conservatism'으로 나옵니다. 우리가 쓰는 수구와 가까운 말로 'ottantottism'이 있기는 하지만 웬만한 영어사전에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와는 다른 의미로 수구란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한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그 이유을 알 수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지혜로서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정녕 지켜야할 것을 지키기 위해 버릴 것은 버릴 줄 알고 개혁을 주장하거나 최소한 포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서구에서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버크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혁을 옹호했으며, 성공적인 보수주의 정치가였던 디즈레일은 자유주의적 급진개혁을 예방하기 위해 1867년 자유주의자들의 구상보다 훨씬 더 혁신적인 선거법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건창(李建昌)은 동학교도들이 난을 일으키자 짐승을 사냥하듯 이들을 소탕해야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한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신동으로 소문난 사람이었으며 20대에 암행어사로 이름을 떨친 자였습니다. 민란을 수습하기 위해 고을 원님이 아니라 도지사인 관찰사를 두 명이나 파직시킨 강골이었습니다. 고종이 지방관을 임명할 때, 가서 잘못하면 이건창을 보낸다는 엄포까지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하고, 그들이 난에 이르게까지 한 학정을 더 매섭게 비난한 사람이 바로 이건창입니다. 이건창은 개화파와 손잡기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건창이 정녕 못 견뎌한 것은 개화 그 자체가 아니라 개화파의 부박함이었습니다. 김옥균의 경솔함이나 어제의 신하였던 서재필이 미국 시민이 되어 돌아와 임금 앞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뿌리없는 태도를 견딜 수 없어 했던 것입니다.
이건창이 47세의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그 누구보다 보고싶어했던 벗이 매천 황현(梅泉 黃玹)이었습니다. 황현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시인인 황현 역시 동학난을 일으킨 무리들을 깡그리 잡아 죽여야 한다던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그 유명한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합니다. "내가 꼭 죽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죽는 것은 아니다"라며 "황은이 망극해서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지만" 500년 선비를 키운 나라에서 나라가 망하는 날에 죽는 사람이 하나 없다면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니겠냐며 치사량의 아편을 먹습니다.

이제 좀 더 가까이 와서, 우리가 흔히 '진보주의자' 혹은 '극좌'라고까지 부르는 사람들이 사실은 보수주의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장준하는 극우민족단체 민족청년단의 간부이며, 함석헌은 신의주반공의거의 배후이자 공산주의가 싫어 월남한 사상가입니다. 문익환은 미군 통역장교 출신이며, 계훈제는 우익 반탁진영의 행동대장이었습니다. 김수영은 의용군에 나갔다가 탈출하여 거제도에 수용된 뒤 남쪽을 택한 반공포로였으며 리영희 역시 국군 장교 출신입니다. 이 정도 경력이라면 이 관제 '빨갱이'들의 사상적 검증이 끝난 게 아닐까요? 그러나 그들은 민족분단의 특수상황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한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설 땅이 일제 말기의 친일행위로 인해 사라졌다면, 진보적 지식인들은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 와중에 철저히 이 땅에서 사라졌다". 그러면서 지금 보수주의자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덕목인 도덕성, 일관성, 책임감, 지혜 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당치 않은' 족속들이다. 그들은 한번도 정녕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린 적도 없고, 희생한 적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의 편가르기에 앞서 보수세력이 먼저 수구세력과 스스로 결별"하라는 말로 글을 맺습니다. 이상이 <'참된 보수'를 아십니까>에 나오는 주요 내용입니다.

제 작은 바람은,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멸균실 수준의 반공이 유지되다가 의식의 변화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좌파라고 말하기에는 참으로 어설픈 사람들을 상대로 우리 사회가 악령이 떠돌고 홍위병이 설치고 사회주의자들이 날뛰는 혼란에 빠져 있다고 싸움을 거는 수구세력들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되짚어 볼 기회가 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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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서울대 국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미국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있음.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역사는 지루하고 재미 없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뛰어넘는, 신선하고 도발적인 글쓰기로 독자들의 폭넓은 호응을 얻음. 베트남전 진실위원회 집행위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논문으로는 <상처받은 민족주의>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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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의 역사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 연재중입니다.
<한겨레21> 사이트에 가면 그간의 연재기사를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되지 않은 최신의 연재 칼럼들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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