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2–2009

손병목의 독서노트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요즘 뉴스를 보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이 터지고 있습니다. 연예인들의 인권과 스타 산업의 허실을 고민하게 만든 연예인 X 파일 사건,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공사 중단과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하며 오늘로서 단식 90일째를 맞이하고 있는 지율스님 이야기, 그리고 한일협상 관련 외교문서 공개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한일협상 관련 문서 공개는 정치적,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클 것 같습니다. 아직 비밀해지가 안 되어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미 CIA의 보고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당시 공화당의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행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얼마 전 "박근혜가 누구의 딸이라는 것을 잊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잊으라고 한다고 어디 잊혀지겠습니까. 때마침 <그때 그사람들>이라는 영화까지 개봉을 앞두고 있네요.


   제   목 :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지은이 : 전재호
   펴낸곳 : 책세상 (초판 출간일 2000.5.25 |2004.1.20일刊 초판 7쇄를 읽음) ₩3,900

주말에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를 읽었습니다. 최근의 상황을 의식하고 고른 건 아닙니다. 지난 연말에 회사 근처 서점에 갔다가 책 제목에 이끌려 무심결에 샀던 것입니다. 순전히 호기심으로 샀다면 거짓말이구요, 실은, 인간 박정희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이 맹목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나 또한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다만 '감정'에만 근거하여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건 아닌가하는 반성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 책이 씌어진 때는 2000년, 그러니까 90년대 말에 서서히 불기 시작한 박정희 신드롬을 우려하며 쓴 책입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지원하면서 박정희 신드롬에 한 몫을 하던 때였습니다. 저자는 <박정희 체제의 민족주의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 연구원으로 있는 전재호 씨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보수 언론과 국정교과서의 시각으로 박정희를 보는 사람들과 민족주의자냐 아니냐라는 시각으로 그를 평가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거의 공통적이면서 유일한 치적으로 내세우는 경제 발전(=근대화)를 저자는 '반동적 근대화'라고 정의합니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이 신분제도에 속박받고 있던 개인을 해방시키고 민주주의를 탄생시키는 혁명적이고 진보적인 성격이었던 데 반해,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서구와 같은 혁명성 진보성 합리성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기술적 진보만을 중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 잔재를 고스란히 안은 - 다시 말해, 남북 간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국내외적 상황에서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교육받고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던 - 집단들이 새로 탄생한 한국의 근대화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근대화의 성격을 '반동적'이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반동적이란 '반민족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성이 지닌 진보성 혁명성 합리성 민주성이 제거됐다는 의미입니다.

제1장 <박정희는 민족주의자인가?>에서 저자는, 어떤 정권이 민족주의적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민족의 독립이나 통합, 발전 등에 대한 '지향성'만 가지고 있을 뿐,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전술이 없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 즉 민족주의는 구체적인 전술을 가진 다른 이데올로기와 결합해야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입니다. 저 또한 필자의 주장에 백분 동의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박정희가 민족주의자냐 아니냐는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의 '민족주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고, 결국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2장 <박정희 정권의 반동적 근대화>는 이 책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반동적 근대화'의 의미는 이미 언급을 했는데, 이것과 더불어 우리가 어렸을 때 늘 들어왔던 '한국적 민주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말씀 안 드려도 다들 아시겠지만 박정희가 말한 '민족적 민주주의'와 '한국적 민주주의'는 당시 야당의 자유민주주의에 반대하기 위한 구호였을 뿐, 그 어떤 민주주의적 인식을 가지고 만든 철학이 아닙니다.

또한 이 장에서는 박정권의 최대 치적이라 할 수 있는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60년대 초반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은 박정권에게는 정치적 정통성을 만회하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되었는데, 특히 남북간의 경제적 격차는 북한과의 경쟁에서의 패배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제 발전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아울러 이 개발계획은 이미 장면 정부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추진하려던 것의 복사판에 다름 아니며, 실제로 제1차 계획이 그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수정하여 시행했는데, 이는 미국 정부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더욱이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과 최악의 노동조건에 시달린 노동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 성장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간과한 채 경제 성장의 공을 박정권에게만 돌리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제3장 <박정희 신드롬 비판>에서는, 박정희 사후 독재정권의 재탄생의 원인과, 그 후 박정희 신드롬이 일어난 원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의 쟁취하지 못했기에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것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박정희 독재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국민들은 새로운 독재자의 출현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10.26과 전두환의 쿠데타를 통한 정권 장악). 전두환에 의해 다시 시작된 독재가 민주화 투쟁으로 타격을 입게 되면서, 민주화 세력 뿐만 아니라 그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박정희의 후예들도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레드 콤플렉스'로 인해 움츠러든 국민들은 박정희 정권이 조작해 낸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 특히 인권과 민주주의를 짓밟은 범죄들을 제대로 인식할 겨를도 없이 잊혀지고 단지 눈에 보이는 양적으로만 측정할 수 있는 경제적 지표에 현혹되어 박정희 정권의 부정적 측면을 잊었습니다. 사실 박정권에 대한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투옥, 고문, 사형을 당한 사람들은 어쨌거나 전 인구 중 아주 소수에 불과하니까요. 결국 저자는, 박정희 신드롬의 원인을,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논리에 내포되어 있던 배금주의와 물신주의가 한국인들의 사고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이글 서두에 언급한 공개된 한일협상 문건 중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한일관계의 미래' 라는 제목의 1966년 3월 18일자 미 중앙정보국 특별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1961-1965년 사이 당시 민주공화당 총 예산의 2/3를 제공한 바, 각 개별 기업의 지원 금액이 각각 1백만$에서 2천만$에 이르며 6개의 기업이 총 6천6백만$을 지원했다.…민주공화당은 또한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기업으로부터도 지불을 받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부방출미 60,000톤을 일본에 수출하는 과정에 개입한 8개의 한국회사가 민주공화당에 115,000$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박정희 정권은 국교 수립 이전부터 적대적 관계에 놓여있던 일본의 기업자금을 토대로 수립되었으며, 매판자금 수수에 대한 보상으로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을 서둘렀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한 일본 정부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일본기업들은 박정희가 불법 쿠데타를 일으킨 61년부터 한일협정이 체결된 65년까지 지속적으로 민주공화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박정희가 일본의 이익을 가장 완벽하게 보장할 친일인물로 간주되었던 모양입니다.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주어진 일제 36년간 수탈의 대가가 무상차관 3억$였는데, 그것의 1/5이 넘는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한일협정 체결 이전에 수수한 박정희 정권은 '반동적 근대화'를 추진한 정권 이전에 '매국 정권'으로 규정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부록

column20050124_s.jpg
column20050124_s.jpg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