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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 - 근대화와 민족주의 시각에서
아담 스미스와 그의 《국부론》을 살펴보기 위해 여러 도서를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참고 도서가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쓴 논문이야 부지기수일 겁니다. 그러나 시중 출판된 책의 종수만 따져보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참 의외였습니다.
다카시마젠야의 《아담 스미스》는 얼마 되지 않는 참고 도서 중에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분량은 비록 얼마 되지 않지만 '근대화'와 '민족주의' 시각에서 아담 스미스를 바라본 저자의 입장이 명쾌하게 드러난 책입니다.
아담스미스와 《국부론》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분에게는 이 책 역시 전혀 흥미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국부론》을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이 책부터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스미스의 생애, 그가 살던 사회, 시민사회의 정의, 《국부론》의 해석 방법, 그리고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아담 스미스
부 제 : 근대화와 민족주의 시각에서
지은이 : 다카시마젠야(高島善哉) / 김동환 옮김
펴낸곳 : 소화 (초판 출간일 2004.1.30) 초판 1쇄를 읽음 / 값 8,000원
아담 스미스,하면 바로 떠오르는 두 가지 단어. 바로 '이기심'과 '자유 방임주의'입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아담 스미스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시종일관 이 두 단어로 대표되는 아담 스미스에 대한 섣부른 평가를 경계하라고 합니다. 몇몇 문장만으로 아담 스미스를 보지 말고, 전체를 보라고 말합니다. 《국부론》은 매우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리 체계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후세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특정 면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아담 스미스의 전체상은 한마디로 '근대화의 투사'라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영국'이라는 지역적·시대적 한계를 분명히 안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의 부제를 '근대화와 민족주의 시각에서'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저자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갈구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반면, 그를 이은 후대의 학자들은 현존의 경제체제에서 누리는 자유가 평온 무사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소극적이고 과거지향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아담 스미스는 분명히 낙관적인 사상가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조화와 균형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미스가 말하는 사회 조화관과 자연조화 사상은 18세기 분쟁과 변혁의 시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스미스의 조화관은 자유를 위한 투쟁과 새로운 사회의 도래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담긴 것입니다. 낡은 질서 대신 살아 있는 개인의 창의와 생산력에 넘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조화의 사상도 때로는 혁신적인 사상이 되고 때로는 보수적인 사상이 되기도 합니다. 스미스 자신도 그러했고, 스미스를 계승한 여러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자는 《국부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담 스미스와 동일한 급에서 제대로 겨룰 수 있는 사람으로 마르크스를 꼽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두루뭉술하게 생각했던 것을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발전시킨 사람으로 주저없이 마르크스를 지목합니다.
고대, 근대, 중세 또는 수렵, 목축, 농업사회라는 식의 역사적 체제 구분 방식은 모호하기 그지없습니다. 역사상 특정 시기를 지배하고 있는 일관된 원리, 통합된 체제 원리가 반영되지 않은 분류 방식입니다. 그에 비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자본과 자본의 운동으로 명확하게 밝힌 데 있습니다. 자본가는 자본이 인격화된 구체적인 모습에 불과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범한 시민은 없습니다. 자본의 메커니즘을 벗어나서 살 수 없는 사회,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해 그리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책의 주인공은 아담 스미스이니까요.
아담 스미스와 《국부론》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조만간 연재하겠습니다.
*
논술 열풍이 매우 뜨겁습니다. 대학에서 변별력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내신과 수능 외에 논술이라는 또 하나의 선발 단계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입장에서야 어쩔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학생 입장에서는 내신과 수능 외에 논술을 '더' 해야 하는 3중고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매우 안타깝고 안쓰러운 광경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논술 열기가 교양의 양적인 확대를 불러온 것 같습니다. 시중에 참 많은 교양서, 예를 들어 동서양 고전 입문서와 철학의 제문제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서적들이 꽤 많습니다. 통합교과논술이라 하여 교과 간의 경계를 허무는, 종횡무진하는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즐거워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교양과 지식의 양적인 확대가 반드시 질적인 깊이를 동반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담 스미스,하면 '이기심'과 '자유방임주의'의 원조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른지 의문입니다.
하기야 이런 것조차 전혀 모르는 것보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아는 게 낫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 괜한 고민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카시마젠야의 《아담 스미스》는 얼마 되지 않는 참고 도서 중에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분량은 비록 얼마 되지 않지만 '근대화'와 '민족주의' 시각에서 아담 스미스를 바라본 저자의 입장이 명쾌하게 드러난 책입니다.
아담스미스와 《국부론》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분에게는 이 책 역시 전혀 흥미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국부론》을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이 책부터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스미스의 생애, 그가 살던 사회, 시민사회의 정의, 《국부론》의 해석 방법, 그리고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아담 스미스
부 제 : 근대화와 민족주의 시각에서
지은이 : 다카시마젠야(高島善哉) / 김동환 옮김
펴낸곳 : 소화 (초판 출간일 2004.1.30) 초판 1쇄를 읽음 / 값 8,000원
아담 스미스,하면 바로 떠오르는 두 가지 단어. 바로 '이기심'과 '자유 방임주의'입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아담 스미스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시종일관 이 두 단어로 대표되는 아담 스미스에 대한 섣부른 평가를 경계하라고 합니다. 몇몇 문장만으로 아담 스미스를 보지 말고, 전체를 보라고 말합니다. 《국부론》은 매우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리 체계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후세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특정 면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저자가 말하는 아담 스미스의 전체상은 한마디로 '근대화의 투사'라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영국'이라는 지역적·시대적 한계를 분명히 안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의 부제를 '근대화와 민족주의 시각에서'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저자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갈구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반면, 그를 이은 후대의 학자들은 현존의 경제체제에서 누리는 자유가 평온 무사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소극적이고 과거지향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아담 스미스는 분명히 낙관적인 사상가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조화와 균형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미스가 말하는 사회 조화관과 자연조화 사상은 18세기 분쟁과 변혁의 시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스미스의 조화관은 자유를 위한 투쟁과 새로운 사회의 도래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담긴 것입니다. 낡은 질서 대신 살아 있는 개인의 창의와 생산력에 넘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조화의 사상도 때로는 혁신적인 사상이 되고 때로는 보수적인 사상이 되기도 합니다. 스미스 자신도 그러했고, 스미스를 계승한 여러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자는 《국부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담 스미스와 동일한 급에서 제대로 겨룰 수 있는 사람으로 마르크스를 꼽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두루뭉술하게 생각했던 것을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발전시킨 사람으로 주저없이 마르크스를 지목합니다.
고대, 근대, 중세 또는 수렵, 목축, 농업사회라는 식의 역사적 체제 구분 방식은 모호하기 그지없습니다. 역사상 특정 시기를 지배하고 있는 일관된 원리, 통합된 체제 원리가 반영되지 않은 분류 방식입니다. 그에 비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자본과 자본의 운동으로 명확하게 밝힌 데 있습니다. 자본가는 자본이 인격화된 구체적인 모습에 불과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범한 시민은 없습니다. 자본의 메커니즘을 벗어나서 살 수 없는 사회,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해 그리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책의 주인공은 아담 스미스이니까요.
아담 스미스와 《국부론》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조만간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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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열풍이 매우 뜨겁습니다. 대학에서 변별력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내신과 수능 외에 논술이라는 또 하나의 선발 단계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입장에서야 어쩔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학생 입장에서는 내신과 수능 외에 논술을 '더' 해야 하는 3중고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매우 안타깝고 안쓰러운 광경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논술 열기가 교양의 양적인 확대를 불러온 것 같습니다. 시중에 참 많은 교양서, 예를 들어 동서양 고전 입문서와 철학의 제문제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서적들이 꽤 많습니다. 통합교과논술이라 하여 교과 간의 경계를 허무는, 종횡무진하는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즐거워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교양과 지식의 양적인 확대가 반드시 질적인 깊이를 동반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담 스미스,하면 '이기심'과 '자유방임주의'의 원조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른지 의문입니다.
하기야 이런 것조차 전혀 모르는 것보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아는 게 낫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 괜한 고민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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