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2–2009

손병목의 독서노트

박제가의 《북학의》

국사 시간에 배운 바로는 박제가는 실학파입니다. 그 중에서도 북학파라고 합니다. 또는 이용후생학파라고도 합니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 재미가 없었던 건, 이런 '딱지 붙이기' 즉 '~파' '~주의'라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암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실학파의 3대 분파로, 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으로 대표되는 이용후생학파, 추사 김정희로 대표되는 실사구시 학파 등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학파에 관해서는 한자의 뜻만 제대로 풀이하고 그 배경을 조금만 이해해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고등학교 때에는 왜 그러하지 못했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조금씩 제대로 알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학이라고 하면, 실(實)하지 않는 학문이라는 뜻의 반대되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허학(虛學)이라고 합니다. 한자 뜻을 언뜻 살펴봐도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실학은 당시에 사용되던 뜻과는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 실학이라는 의미는 조선후기에 대두된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실은 이미 그 전부터 널리 유학자들 사이에 통용되던 말이었습니다. 즉 '유학=실학', '허학=불교 또는 노장사상'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유학자들의 눈에는 현실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는 불교와 도교의 사상은 '헛된' 학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제   목 : 북학의
   지은이 : 박제가 / 김승일 옮김
   펴낸곳 : 범우사 (초판 출간일 1995.10.30 / 2004.3.20일刊 2판 1쇄를 읽음) ₩2,800

연암 박지원과 함께 북학파(=이용후생학파=중상학파)를 대표하는 박제가의 《북학의》를 읽었습니다.
북학파(北學派)의 북학은 북쪽의 학문을 가리키고, 이는 다름 아닌 당시 청나라의 학문을 말합니다.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는 '북쪽의 학문을 논의한다'는 의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제가가 청에 다녀와서 당시 그곳에서 본 수레, 선박, 성, 궁실, 창호, 도로, 교량, 목축, 상업, 은, 돈, 철, 목재, 의복, 의약, 도장, 종이, 활, 문방구, 고동서화, 시장, 자, 벽돌, 유희, 소, 말 등 일상 생활에서 소용이 닿는 각종 물건, 도구 등의 제작법, 사용법, 개선안 및 그 이점을 두루 설명하고 있는데, 너무 디테일^^하여 큰 감흥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물론 연구하는 입장에서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참으로 흥미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저 또한 현재의 책을 읽는 목적이 실용적인 측면이 많기 때문에 옛 청조의 생활백과사전같은 글을 꼼꼼히 읽고 가슴에 새길 까닭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옛 실학 책이 오늘날에도 실학일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다행히도 옛글이라지만 번역이 매끄러워 글을 읽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글 중에는 오늘날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글들도 꽤 있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박지원이 쓴 서문과 〈내편〉에서는 수레, 〈외편〉에서는 과거 제도를 논한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크게 느낀 바가 없어 박제가에 대해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니 오히려 그런 자료들에서 더 큰 흥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태준이 《문장강화》에서 "기행문에서는 흥취로 교(驕)하되 지식으로 교할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비록 이 글이 기행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슨 강의를 하듯 고증과 주장을 일삼아서는 리뷰가 아니라 학문이 되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박제가와 실학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옮겨 싣지 않겠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데, 아는 게 별로 없으니 공연히 책 탓만 한 것 같습니다. 이래 저래 알아나가는 것이니, 오늘은 어제보다 요만큼이라도 더 알았다는 사실에 만족해야겠습니다. 나중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요.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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