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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의 《북학의》
국사 시간에 배운 바로는 박제가는 실학파입니다. 그 중에서도 북학파라고 합니다. 또는 이용후생학파라고도 합니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 재미가 없었던 건, 이런 '딱지 붙이기' 즉 '~파' '~주의'라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암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실학파의 3대 분파로, 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으로 대표되는 이용후생학파, 추사 김정희로 대표되는 실사구시 학파 등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학파에 관해서는 한자의 뜻만 제대로 풀이하고 그 배경을 조금만 이해해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고등학교 때에는 왜 그러하지 못했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조금씩 제대로 알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학이라고 하면, 실(實)하지 않는 학문이라는 뜻의 반대되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허학(虛學)이라고 합니다. 한자 뜻을 언뜻 살펴봐도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실학은 당시에 사용되던 뜻과는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 실학이라는 의미는 조선후기에 대두된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실은 이미 그 전부터 널리 유학자들 사이에 통용되던 말이었습니다. 즉 '유학=실학', '허학=불교 또는 노장사상'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유학자들의 눈에는 현실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는 불교와 도교의 사상은 '헛된' 학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제 목 : 북학의
지은이 : 박제가 / 김승일 옮김
펴낸곳 : 범우사 (초판 출간일 1995.10.30 / 2004.3.20일刊 2판 1쇄를 읽음) ₩2,800
연암 박지원과 함께 북학파(=이용후생학파=중상학파)를 대표하는 박제가의 《북학의》를 읽었습니다.
북학파(北學派)의 북학은 북쪽의 학문을 가리키고, 이는 다름 아닌 당시 청나라의 학문을 말합니다.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는 '북쪽의 학문을 논의한다'는 의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제가가 청에 다녀와서 당시 그곳에서 본 수레, 선박, 성, 궁실, 창호, 도로, 교량, 목축, 상업, 은, 돈, 철, 목재, 의복, 의약, 도장, 종이, 활, 문방구, 고동서화, 시장, 자, 벽돌, 유희, 소, 말 등 일상 생활에서 소용이 닿는 각종 물건, 도구 등의 제작법, 사용법, 개선안 및 그 이점을 두루 설명하고 있는데, 너무 디테일^^하여 큰 감흥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물론 연구하는 입장에서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참으로 흥미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저 또한 현재의 책을 읽는 목적이 실용적인 측면이 많기 때문에 옛 청조의 생활백과사전같은 글을 꼼꼼히 읽고 가슴에 새길 까닭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옛 실학 책이 오늘날에도 실학일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다행히도 옛글이라지만 번역이 매끄러워 글을 읽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글 중에는 오늘날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글들도 꽤 있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박지원이 쓴 서문과 〈내편〉에서는 수레, 〈외편〉에서는 과거 제도를 논한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크게 느낀 바가 없어 박제가에 대해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니 오히려 그런 자료들에서 더 큰 흥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태준이 《문장강화》에서 "기행문에서는 흥취로 교(驕)하되 지식으로 교할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비록 이 글이 기행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슨 강의를 하듯 고증과 주장을 일삼아서는 리뷰가 아니라 학문이 되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박제가와 실학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옮겨 싣지 않겠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데, 아는 게 별로 없으니 공연히 책 탓만 한 것 같습니다. 이래 저래 알아나가는 것이니, 오늘은 어제보다 요만큼이라도 더 알았다는 사실에 만족해야겠습니다. 나중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요.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 재미가 없었던 건, 이런 '딱지 붙이기' 즉 '~파' '~주의'라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암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실학파의 3대 분파로, 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으로 대표되는 이용후생학파, 추사 김정희로 대표되는 실사구시 학파 등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학파에 관해서는 한자의 뜻만 제대로 풀이하고 그 배경을 조금만 이해해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고등학교 때에는 왜 그러하지 못했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조금씩 제대로 알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학이라고 하면, 실(實)하지 않는 학문이라는 뜻의 반대되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허학(虛學)이라고 합니다. 한자 뜻을 언뜻 살펴봐도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실학은 당시에 사용되던 뜻과는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 실학이라는 의미는 조선후기에 대두된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실은 이미 그 전부터 널리 유학자들 사이에 통용되던 말이었습니다. 즉 '유학=실학', '허학=불교 또는 노장사상'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유학자들의 눈에는 현실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는 불교와 도교의 사상은 '헛된' 학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제 목 : 북학의
지은이 : 박제가 / 김승일 옮김
펴낸곳 : 범우사 (초판 출간일 1995.10.30 / 2004.3.20일刊 2판 1쇄를 읽음) ₩2,800
연암 박지원과 함께 북학파(=이용후생학파=중상학파)를 대표하는 박제가의 《북학의》를 읽었습니다. 북학파(北學派)의 북학은 북쪽의 학문을 가리키고, 이는 다름 아닌 당시 청나라의 학문을 말합니다.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는 '북쪽의 학문을 논의한다'는 의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제가가 청에 다녀와서 당시 그곳에서 본 수레, 선박, 성, 궁실, 창호, 도로, 교량, 목축, 상업, 은, 돈, 철, 목재, 의복, 의약, 도장, 종이, 활, 문방구, 고동서화, 시장, 자, 벽돌, 유희, 소, 말 등 일상 생활에서 소용이 닿는 각종 물건, 도구 등의 제작법, 사용법, 개선안 및 그 이점을 두루 설명하고 있는데, 너무 디테일^^하여 큰 감흥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물론 연구하는 입장에서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참으로 흥미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저 또한 현재의 책을 읽는 목적이 실용적인 측면이 많기 때문에 옛 청조의 생활백과사전같은 글을 꼼꼼히 읽고 가슴에 새길 까닭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옛 실학 책이 오늘날에도 실학일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다행히도 옛글이라지만 번역이 매끄러워 글을 읽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글 중에는 오늘날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글들도 꽤 있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박지원이 쓴 서문과 〈내편〉에서는 수레, 〈외편〉에서는 과거 제도를 논한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크게 느낀 바가 없어 박제가에 대해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니 오히려 그런 자료들에서 더 큰 흥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태준이 《문장강화》에서 "기행문에서는 흥취로 교(驕)하되 지식으로 교할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비록 이 글이 기행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슨 강의를 하듯 고증과 주장을 일삼아서는 리뷰가 아니라 학문이 되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박제가와 실학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옮겨 싣지 않겠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데, 아는 게 별로 없으니 공연히 책 탓만 한 것 같습니다. 이래 저래 알아나가는 것이니, 오늘은 어제보다 요만큼이라도 더 알았다는 사실에 만족해야겠습니다. 나중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요.
부록

댓글 7
왠지 낮설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얼마지난 물품들을 거의 골동품이라고 평가하는데
그당시에도 당연히 공동품이 있을거란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우리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물증인가요
그리고, 고서화와 골동서화란 단어는 의미가 다른것인가요
만약에, 골동서화란 단어가 특정물품을 지칭한다면
또다시 나의 고착화된 지식을 탓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문이 그리 길지 않으니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고동서화(古董書畵)
유리창(琉璃廠) 좌우 십여 리 지역 및 용봉사(龍鳳寺) 근처 시장에, 언뜻 보면 찬란하게 번쩍거리며 그 아름다움을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모두 옛 제기(祭器)와 솥, 고옥(古玉) 서화(書畵) 등 기묘한 것들이나 실상 진품(眞品)은 보기가 힘들다.
천하의 수만 금과 재물들이 여기에 모여들어 팔고 사는 자가 그치질 않는다. 어떤 사람은 “풍부하기는 하지만 백성의 생활에는 아무런 보탬이 없는 것이다. 불태워 버려도 무슨 손해가 있으랴”한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는 듯하나 그렇지 않다. 푸른 산, 흰 구름은 반드시 먹고 입는 것인가?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사랑한다. 새와 짐승, 벌레와 물고기 등의 명칭과 술항아리, 술잔의 형식과 제도, 산천의 네 계절을 글과 그림으로 나타낸 뜻을 주역에서는 괘의 형상으로 취했다. 또 시경에서는 흥(興)으로 엮었으니 어찌 까닭없이 그렇게 하였으랴.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의 슬기로움을 도우며 천기(天機)*를 활발하게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학문이라고 하면 과거(科擧)를 치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보고 듣는 것은 국경을 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불경(佛經)이 박힌 종이를 더럽다 하며, 밤색 화로를 추하아 하여 점점 외면하면서 그 아름다운 경지와 스스로 인연을 끊는다.
벌레도 꽃에서 사는 것은 날개와 수염에서 향기가 나지만, 더러운 데서 생긴 것은 꿈틀거리는 것이 추하고 징그럽기만 하다. 미물도 이와 같으니 사람도 또한 그러함이 당연하다. 꽃 같고 화려한 비단옷 속에서 생장한 자는 더러운 먼지 속에서 골몰하는 자와는 반드시 다름이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 사람이 ‘꽃 속에서 사는 벌레의 수염과 날개’처럼 향기롭지 못함을 염려한다.
무릇 천하에 보배될 만한 물건도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 모두 천해진다.
삼대(三代) 시대의 기물(器物)과 명현(名賢)의 필적(筆蹟)도 그 가치대로 값을 받지 못하며, 필묵(筆墨), 향다(香茶), 서책(書冊) 등도 항상 중국 것의 반 값이니 이는 모두 사대부가 옛 것을 좋아하지 않은 까닭이다.
얼마 전에 한 서점에 들어갔다가 주인이 매매한 무서를 정리하기에 분주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어떤가? 책 장수가 책 한 권을 가지고 두어 달씩이나 사대부 집을 두루 돌아다녀도 제대로 팔리지 않는 형편이 아닌가. 나는 여기서 중국이 문명의 본고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천기 : 모든 조화를 꾸미는 하늘의 기틀. 또는 타고난 기지(機智).
책 읽지 않는 습성은 18세기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직장에서 보면 평균적으로 책을 너무 안 봅니다.
'소설 박제가'와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들여 놓았습니다.
책 사들이는 재미와 읽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잠시 글 쓰기를 중지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글을 쓰다가, 다 쓰기도 전에 이내 중단하고 맙니다.
짧게 말씀드리자면, 근본 원인은 체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몸을 좀 더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일과 술 등으로 지친 체력을 먼저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전까지 잠시 좀 쉴까 합니다.
몸이 먼저입니다.
몸이 편해야 편한 글도 나오지요.
제대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당분간 쉬신다고 하니 좀 아쉽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진행하시는 일이 잘 되길 바랍니다.
찬바람이 불 때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