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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랭이 큰 아버지
<책읽기를 좋아하는 병목님을 생각하며 글쓰기를 하였습니다.
저도 책을 좋아하는데 병목님에는 못미치는 듯합니다.
책을 좋아하셨던 저의 큰아버지 이야기입니다.-신천 >
******************************************************************
큰아버지의 별명은 '호랭이'였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동네 공당 가까이에 호랭이 큰아버지 집이 있다. 공당으로 놀러 나올 때, 또는 집으로 돌아 갈 때 호랭이 큰아버지 집을 지나친다. 언제나 겁먹은 표정으로 살금살금 걸었다. 마치 진짜 호랑이가 나오지 않나 하는 두려움으로.
지금이야 누가 호랑이를 무서워 하겠는가. 기껏 동물원에서나 축 늘어져 맥빠진 후손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 삶에 영향은 전무하다. 이젠 아예 호랑이라는 단어를 잊고 산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호랑이라는 단어와 무척 친숙하였다. 어린 아이가 울면 호랑이가 나온다 하였고, 나의 할머니의 단골 '욕'은 "호랭이가 물어 갈 놈"이었다. 어른들의 입에 자주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한 두 세대 이전에 심심산골이던 우리 고향에 호랑이가 자주 등장했음을 알게 한다.
산 속의 호랑이는 일제 시대와 육이오전쟁을 치루면서 멸종되었다. 나는 다만 큰아버지의 별명으로나마 호랑이에 대한 추억을 반추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호랭이 큰아버지는 우리들의 허튼 수작이나 마땅찮은 행동을 보시면 어김없이 불호령을 하셨다. 큰 아버지는 동네 모든 젊은 이와 아이들의 경계 대상 1호였다. 고향엔 호랑이가 건재해서 우리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있었다.
서울로 와서 잘 살아 보겠다고 바삐 지내다 보니 호랭이 큰아버지를 그저 일 년에 한두 번 시골에 갈 때나, 집안 큰 대사가 있을 때 만나 뵙게 될 뿐이었다. 항상 긴 수염을 기르셨고, 노인이 되었음에도 눈매는 호랑이처럼 빛이 나셨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말이 있지만, 큰 아버지는 이빨이 빠졌음에도 "호랭이"의 당당함과 기세는 변함이 없었다.
모내기가 한창인 오월이었다. 87세 되신 호랭이 큰아버지를 찾아 뵈었다. 방에서 소설을 읽고 계셨다. 커다란 돋보기 안경을 쓰셨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면서도 항상 책 읽기를 좋아하셨다. 나는 그런 큰아버지의 모습이 좋았다. 나는 나이가 더 들어 세상에 쓸모있는 일도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큰아버지처럼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상상 하곤 한다.
"큰 아버지 눈도 잘 안 보이실텐데 책을 보세요?"
"아직 돋보기 쓰고 볼만 하다. 참 재미있구나."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호랑이를 마주하는데 겁을 내지 않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러하듯이 호랑이 큰아버지도 부지런함 외에는 건강관리를 따로 하시지 않으셨다. 운동이라야 아침 싸리비로 쓰윽 쓱 마당을 쓰는 일과 농사 일을 거드는 일 뿐이셨다. 팔십 대 후반임에도 큰아버지는 늘 건강한 모습으로 논밭을 오르내리셨다.
다음 날 들에 나가니 호랭이 큰아버지는 씩씩하게 논두렁을 오가시며 모내기 진두지휘를 하시고 계셨다. 우리를 보더니 반가워 하며 "애들아 못밥 먹고 가라" 하셨다. 못밥을 아는 이가 이제는 별로 없을 듯하다. 농사는 기계에 맡기고, 참과 점심은 식당에 전화를 하면 배달이 되는 재미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어린 시절 모내기철에 논두렁에서 박을 잘라 만든 바가지에 담아 먹는 못밥은 별미 이상이었다.
모내기 철 시골을 다녀 온 일주일 뒤 호랭이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렇게 건강히 오고 가셨는데 일주일이 안되어 돌아가시다니 믿기지 않았다. 슬픔도 있었지만 행복한 죽음이란 생각도 들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책과 일을 벗하시다가, 병원 신세 한 번 아니 지시고, 자식 수발 받지 않으시고, 깨끗한 삶을 마감하신 '호랭이 큰아버지'는 정말 호랑이다운 당당한 모습이셨다.
이제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늙으신 부모로 신경을 쓰는 많은 지인들을 만나게 되니, 호랑이 큰아버지의 깨끗한 죽음이 더욱 우러러 보인다. 일생을 책과 벗하고, 산천 주유하시며, 열심 일하시다 떠난 호랑이 큰아버지. 진정 닮고 싶은 나의 우상이다.
저도 책을 좋아하는데 병목님에는 못미치는 듯합니다.
책을 좋아하셨던 저의 큰아버지 이야기입니다.-신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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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의 별명은 '호랭이'였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동네 공당 가까이에 호랭이 큰아버지 집이 있다. 공당으로 놀러 나올 때, 또는 집으로 돌아 갈 때 호랭이 큰아버지 집을 지나친다. 언제나 겁먹은 표정으로 살금살금 걸었다. 마치 진짜 호랑이가 나오지 않나 하는 두려움으로.
지금이야 누가 호랑이를 무서워 하겠는가. 기껏 동물원에서나 축 늘어져 맥빠진 후손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 삶에 영향은 전무하다. 이젠 아예 호랑이라는 단어를 잊고 산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호랑이라는 단어와 무척 친숙하였다. 어린 아이가 울면 호랑이가 나온다 하였고, 나의 할머니의 단골 '욕'은 "호랭이가 물어 갈 놈"이었다. 어른들의 입에 자주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한 두 세대 이전에 심심산골이던 우리 고향에 호랑이가 자주 등장했음을 알게 한다.
산 속의 호랑이는 일제 시대와 육이오전쟁을 치루면서 멸종되었다. 나는 다만 큰아버지의 별명으로나마 호랑이에 대한 추억을 반추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호랭이 큰아버지는 우리들의 허튼 수작이나 마땅찮은 행동을 보시면 어김없이 불호령을 하셨다. 큰 아버지는 동네 모든 젊은 이와 아이들의 경계 대상 1호였다. 고향엔 호랑이가 건재해서 우리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있었다.
서울로 와서 잘 살아 보겠다고 바삐 지내다 보니 호랭이 큰아버지를 그저 일 년에 한두 번 시골에 갈 때나, 집안 큰 대사가 있을 때 만나 뵙게 될 뿐이었다. 항상 긴 수염을 기르셨고, 노인이 되었음에도 눈매는 호랑이처럼 빛이 나셨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말이 있지만, 큰 아버지는 이빨이 빠졌음에도 "호랭이"의 당당함과 기세는 변함이 없었다.
모내기가 한창인 오월이었다. 87세 되신 호랭이 큰아버지를 찾아 뵈었다. 방에서 소설을 읽고 계셨다. 커다란 돋보기 안경을 쓰셨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면서도 항상 책 읽기를 좋아하셨다. 나는 그런 큰아버지의 모습이 좋았다. 나는 나이가 더 들어 세상에 쓸모있는 일도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큰아버지처럼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상상 하곤 한다.
"큰 아버지 눈도 잘 안 보이실텐데 책을 보세요?"
"아직 돋보기 쓰고 볼만 하다. 참 재미있구나."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호랑이를 마주하는데 겁을 내지 않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러하듯이 호랑이 큰아버지도 부지런함 외에는 건강관리를 따로 하시지 않으셨다. 운동이라야 아침 싸리비로 쓰윽 쓱 마당을 쓰는 일과 농사 일을 거드는 일 뿐이셨다. 팔십 대 후반임에도 큰아버지는 늘 건강한 모습으로 논밭을 오르내리셨다.
다음 날 들에 나가니 호랭이 큰아버지는 씩씩하게 논두렁을 오가시며 모내기 진두지휘를 하시고 계셨다. 우리를 보더니 반가워 하며 "애들아 못밥 먹고 가라" 하셨다. 못밥을 아는 이가 이제는 별로 없을 듯하다. 농사는 기계에 맡기고, 참과 점심은 식당에 전화를 하면 배달이 되는 재미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어린 시절 모내기철에 논두렁에서 박을 잘라 만든 바가지에 담아 먹는 못밥은 별미 이상이었다.
모내기 철 시골을 다녀 온 일주일 뒤 호랭이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렇게 건강히 오고 가셨는데 일주일이 안되어 돌아가시다니 믿기지 않았다. 슬픔도 있었지만 행복한 죽음이란 생각도 들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책과 일을 벗하시다가, 병원 신세 한 번 아니 지시고, 자식 수발 받지 않으시고, 깨끗한 삶을 마감하신 '호랭이 큰아버지'는 정말 호랑이다운 당당한 모습이셨다.
이제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늙으신 부모로 신경을 쓰는 많은 지인들을 만나게 되니, 호랑이 큰아버지의 깨끗한 죽음이 더욱 우러러 보인다. 일생을 책과 벗하고, 산천 주유하시며, 열심 일하시다 떠난 호랑이 큰아버지. 진정 닮고 싶은 나의 우상이다.
댓글 1
정말 부럽습니다. 호랭이 큰아버지처럼 살다 갈수만 있다면 정말 원이 없겠습니다.
간절히 바라면 될까요? 일생을 책과 벗하고 열심히 일하시다 깨끗이 떠남이 가능할까요?
신천님의 글은 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케 만듭니다.
좋은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