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2–2009

짧은 생각

가을이 아픈 건...

오늘 아침 비내린 석촌호수를 처음으로 걸었습니다. 우산을 대충 받쳐쓰면 젖지 않을 정도의 비, 인공호수이기는 하지만 오래되니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호수, 근 몇 주 사이에 채색이 짙어지는 나무들.
계절이 바뀌고 한참 지나서야 겨우 변화를 느끼는 건, 그것들이 늘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변화는 삶과 동의어가 됐습니다. 마르크스는 투쟁의 역사라 했고, 니체는 변신의 역사라 했고, 피터드러커는 지식노동자의 최대 덕목을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역시 변화는 삶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듯, 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유용주의 산문집에서 이런 말을 발견했습니다.

"묵묵히 뒤치다꺼리를 하는 표 안 나는 사내였지요.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뒷감당 다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니 얼마나 상처가 많겠습니까. 돌이면서 거울이면서 부처 같은 사내이지요. 그림자로 말하는 사내였어요. 아니, 그림자 뒤에 서 있는 사내였어요. 알고 보면 맨 뒤에 걸으면서 맨 앞에 선 사람이었어요."
내가 그토록 닮고 싶었던 사람이 바로 저 사내가 아니었던가. 죽비소리였습니다.

가을이 아픈 건 여름을 너무 가볍게 보낸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지난 금요일(28일) 아침에 출근하여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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