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2–2009

손병목의 독서노트

[장자12] 포정의 소 각뜨기

<장자>는 역시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우언이 더 재미있습니다. 도에 대한 장자의 생각이 잘 드러난 우언 하나를 소개합니다.

포정|庖丁|이라는 훌륭한 요리사가 문혜군|文惠君|을 위하여 소를 잡았습니다.
그 손이 닿는 곳, 어깨로 미는 곳, 발로 밟는 곳, 무릎으로 누르는 곳, 움직일 때마다 설컹설컹 쓱쓱싹싹하며 뼈와 살이 떨어지는 소리와 칼질 소리가 범벅이 되어 들렸는데 마치 음악에 맞춘 듯하였습니다.

문혜군이 탄식하며 입을 열었습니다.
“참 훌륭하도다.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까지 올랐는고?”

요리사가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삼 년이 지나자 소 자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정신으로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은 모두 쉬고, 정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하늘이 낸 결을 따라 큰 결 사이에 칼을 대고 큰 구멍에 칼을 집어넣습니다. 이렇게 본래의 모습을 따랐을 뿐인데, 아직 가로 세로 얽힌 힘줄을 베어 본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훌륭한 요리사는 해마다 칼을 바꿉니다.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요리사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19년 동안 이 칼만으로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습니다. 아직도 이 칼은 이제 막 숫돌로 갈아놓은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지만 이 칼날에는 두께가 없을 정도입니다. 두께가 없는 칼날이 틈이 있는 뼈마디 사이를 오가니 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1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칼날이 이제 막 숫돌에서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힘줄과 뼈가 엉켜진 곳을 만날 때면 저도 다루기가 어려워 한층 긴장하여 조심합니다.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고 손발도 천천히 움직이면서 칼질을 매우 조심히 하면 뼈와 살이 툭 갈라지는데 그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듯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저는 칼을 집고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봅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칼을 닦아 손질하여 넣어둡니다.”

문혜군이 말했습니다.
“훌륭하도다. 나는 오늘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이 무엇인지를 알았노라.” <양생주>


포|庖|는 부엌 또는 요리사라는 뜻입니다. 아마 문혜군의 전담 주방장 정도 됐나 봅니다. 그러나 주방장이라고 해도 소를 잡는 백정이니 그 신분의 낮음은 달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포정이 임금 앞에서 감히 도|道|를 논합니다. 이미 익숙해졌듯이 <장자>에서 도를 논하는 사람은 신분이 떨어지고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포정도 그 중 하나죠.

문혜군은 포정이 신들린 듯이 소를 잡는 것을 보고 참으로 대단한 기술을 가졌다고 칭찬합니다. 그런데 포정이 말하길, 그건 기술이 아니라 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도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단계를 뛰어넘어 하늘이 낸 결을 따라 마음대로 칼을 다룰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는 것입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신|神|을 만나 천리|天理| 대로’ 칼을 다룬다고 씌어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하늘이 내린 결을 따라 움직이기만 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나를 버리고, 소조차도 잊어버린 그 경지에서 소가 아닌 하늘이 내린 결|天理|을 따라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이 내린 결이란 게 원래부터 있었던 것일까요? 만약 그랬다면 다른 베테랑 요리사들은 왜 그 길을 알지 못했을까요? 아마 그것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포정이 수년 간 소의 각을 뜨면서 터득한 기술일 것입니다. 뭇 요리사들의 경지를 넘어섰으니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도|道|라고 불렀던 것이겠죠. 하늘이 내린 결은 결국 다름 아닌 포정이 몸소 실천하여 찾은 포정만의 결입니다. 장자는 이미 도를 걸어다녔기 때문에 만들진 것이라 했습니다. 포정이 찾은 천리|天理|라는 도|道|도 포정이 걸어가며 만든 길인 것입니다.

(내일 계속됩니다...)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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