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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菜根譚)
새벽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바람에 찬 기운이 묻어 있습니다. 신문 배달, 우유 배달하는 배달의 일꾼들이 분주합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벌써부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찬물에 세수하고 책을 펴든가 컴퓨터를 켰었지, 이렇게 밖으로 나가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몸도 생각하고 이른 새벽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며 하루를 시작하는 풍경도 즐길 겸, 이제부터 일어나면 천천히 동네 한 바퀴부터 돌아야겠습니다.
제 목 : 채근담
지은이 : 홍자성
펴낸곳 : 범우사 (초판 출간일 1986.4.15 / 2003.11.10일刊 2판 1쇄를 읽음) ₩2,800
요즘 채근담, 장자, 도덕경 등을 읽고 있습니다. 더해서 톨스토이의 인생론이나 러셀의 수상록도 읽어볼까 합니다. 왠지 가을에는 이런 글들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가야할 길이 바쁜 순간이지만, 그래서 더욱 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책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이지만, 그러나 숨가쁘게 달려온 날들을 한번쯤은 돌아볼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에는 하늘 높은 이 가을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새벽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외로운 등불이 반딧불처럼 가물거리고 삼라만상이 소리없이 고요한 밤, 이때가 비로소 우리가 편안히 잠들 때다. 새벽 꿈에서 막 깨어나 만물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때, 이때가 우리가 혼돈 속에서 벗어날 때다. 이때를 틈타 마음의 빛을 밝혀 환히 돌이켜 보면, 비로소 이목구비가 모두 몸을 묶는 수갑이요 정욕과 기호(嗜好)가 다 마음을 타락시키는 기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一燈螢然,萬뢰無聲.此吾人初入宴寂時也.
曉夢初醒,群動未起.此吾人初出混沌處也.
乘此而一念廻光,炯然返照,
始知耳目口鼻皆桎梏,而情欲嗜好悉機械矣.(채근담 146)
도시 생활에서 '삼라만상이 소리없이 고요한 밤'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그나마 새벽 풍경은 '새벽 꿈에서 막 깨어나 만물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때'에 가깝습니다. 마음의 빛을 밝혀 환히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물은 물결이 일지 않으면 스스로 조용하고, 거울은 먼지가 끼지 않으면 저절로 밝다. 그러므로 굳이 마음을 맑게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흐린 것을 버리면 스스로 맑아질 것이다. 또한 굳이 즐거움을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괴로움을 버리면 저절로 즐거울 것이다.
水不波則自定,鑑不예則自明.
故心無可淸,去其混之者而淸自現.
樂不必尋,去其苦之者而樂自存.(채근담 151)
사람의 마음이 본래 맑고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은 여명이 밝아오기 전 새벽 하늘을 바라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구태여 마음을 깨끗이 하려고 애쓸 것도 없이 본래 맑은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지옥철 같은 지하철을 타고 본격적인 삶의 현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음은 흐려지고 괴로움이 찾아듭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남들보다 몸을 한 걸음 더 높이 세워야 할 것입니다.
몸을 한 걸음 높이 세우지 않는다면 마치 먼지 속에서 옷을 털고 흙탕물에 발을 씻는 것과 같으니 어찌 인생을 깨칠 수 있으리요! 세상을 한 걸음 뒤져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마치 불나방이 촛불로 날아들고 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는 것과 같으니 어찌 생활이 안락할 수 있으리요!
立身,不高一步位,如塵裡振衣 泥中濯足,如何超達.
處世,不退一步處,如飛蛾投燈 저羊觸藩,如何安樂. (채근담 43)
세상 사람들보다 한 걸음 높은 곳에 뜻을 두되, 그러나 한 걸음 더 뒤져서 가는 여유가 없으면 세상을 살기 어렵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나 봅니다.
고전이 대개 그러하지만 채근담의 문장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읽기가 쉬워 한달음에 읽어치울 수 있지만 그런들 무엇하겠습니까. 한 번 읽어보고 덮어 둘 책이 아닙니다. 새벽에 일어나 하나씩 마음에 새겨가며 읽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읽을 때 마다 그 느낌이 다릅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고 나이가 듦에 따라 또 다르게 느껴집니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가정을 이루어 살다보니 이런 구절도 눈에 들어옵니다.
집안 식구가 잘못을 저지르면 몹시 성내지도 말고 가볍게 내버려 두지도 말라. 그 일을 말하기 어렵거든 다른 일을 빌어서 넌지시 일깨워 주고, 오늘 깨닫지 못하면 내일 다시 일깨워 주되, 봄바람이 얼어 붙은 것을 녹이듯 하고 온화한 기운이 얼음을 녹이듯 하라. 이것이 곧 가정을 다스리는 법도니라.
家人有過,不宜暴怒,不宜輕棄.
此事難言,借他事隱諷之.今日不悟,俟來日再警之.
如春風解凍,如和氣消氷,재是家庭的型範. (채근담 96)
책을 읽고 글을 씀에 어떻게 읽고 쓰는 것이 좋은지를 알려주는 문장도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독서를 잘하는 사람은 신이 나서 손발이 춤추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형식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사물을 잘 관찰하는 사람은 마음과 정신이 융합되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사물의 외형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채근담 217)
문장이 극치에 이르면 유난히 기이하게 보이지 않고 다만 알맞을 뿐이다. 인품이 극치에 이르면 다만 본래의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채근담 102)
읽을 땐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야 하며, 기이하고 화려하지 않고 다만 평범한 문장이지만 생각과 감정을 알맞게 표현한 것이야말로 문장의 극치라는 뜻입니다.
채근담을 읽으며 책 읽는 마음가짐에 조금 변화가 있었습니다.
비슷한 글, 비슷한 내용, 때로는 (오만하게도) 다 아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이런 글을 읽고 또 읽어야 할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런 글을 반복하여 읽으면서 어느 순간 마음이 닮아감을 느낍니다. 따라서 책을 읽는 이유 중 지식을 얻고자 함도 있겠지만, 이와 같이 내 마음이 그와 같기를 바라기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고전을 읽고 또 읽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編義自見)이라는 말도 있으니, 마음이 그와 같아지고 닮아간다는 뜻에서 독서백편심자화(讀書百編心自化) 또는 독서백편심자초(讀書百編心自肖)라 함은 또 어떨까요?
채근담 [菜根譚]
중국 명(明)나라 말 홍응명(洪應明;自誠)이 지은 책. 책의 이름은 송(宋)나라 왕신민(汪信民)의 소학(小學) 가운데 <사람이 항상 채근(菜根)을 씹을 수 있다면 백사(百事)를 이룰 수 있다(人常能咬菜根卽百事可成)>에서 따온 것이다.
명나라 말 유교적인 교양을 기초로 도교·불교를 조화시킨 재치 있는 문장으로 구성된 책들이 유행하였는데 이 책도 그 가운데 하나로 전집(前集) 222조, 후집(後集) 135조, 총 357조의 청담(淸談)으로 이루어졌다. 전집은 주로 사람끼리 교감하는 도(道)를 논하면서 처세훈(處世訓)과 같은 도덕적 훈계의 말을, 후집은 자연의 정취와 산 속에 은거하는 즐거움을 논하면서 인생의 철리(哲理)와 우주의 이치에 대한 것을 기록하였다. 대부분이 단문이지만 사람의 도리에 대해서 참으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집과 후집으로 나뉘어 있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섭세편, 도심편, 자연편 그리고 수성편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 인생의 철리와 우주의 이치는 유교·불교·도교를 통한 진리로 이것을 어록 형식에 따라 대구(對句)를 사용, 문학적으로 표현하여 구약성서의 지혜서나 선시(禪詩)를 읽는 듯한 깔끔한 깨달음을 후세사람들에게까지 준다.
새벽에 일어나 찬물에 세수하고 책을 펴든가 컴퓨터를 켰었지, 이렇게 밖으로 나가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몸도 생각하고 이른 새벽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며 하루를 시작하는 풍경도 즐길 겸, 이제부터 일어나면 천천히 동네 한 바퀴부터 돌아야겠습니다.
제 목 : 채근담
지은이 : 홍자성
펴낸곳 : 범우사 (초판 출간일 1986.4.15 / 2003.11.10일刊 2판 1쇄를 읽음) ₩2,800
요즘 채근담, 장자, 도덕경 등을 읽고 있습니다. 더해서 톨스토이의 인생론이나 러셀의 수상록도 읽어볼까 합니다. 왠지 가을에는 이런 글들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가야할 길이 바쁜 순간이지만, 그래서 더욱 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책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이지만, 그러나 숨가쁘게 달려온 날들을 한번쯤은 돌아볼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에는 하늘 높은 이 가을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새벽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외로운 등불이 반딧불처럼 가물거리고 삼라만상이 소리없이 고요한 밤, 이때가 비로소 우리가 편안히 잠들 때다. 새벽 꿈에서 막 깨어나 만물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때, 이때가 우리가 혼돈 속에서 벗어날 때다. 이때를 틈타 마음의 빛을 밝혀 환히 돌이켜 보면, 비로소 이목구비가 모두 몸을 묶는 수갑이요 정욕과 기호(嗜好)가 다 마음을 타락시키는 기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一燈螢然,萬뢰無聲.此吾人初入宴寂時也.
曉夢初醒,群動未起.此吾人初出混沌處也.
乘此而一念廻光,炯然返照,
始知耳目口鼻皆桎梏,而情欲嗜好悉機械矣.(채근담 146)
도시 생활에서 '삼라만상이 소리없이 고요한 밤'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그나마 새벽 풍경은 '새벽 꿈에서 막 깨어나 만물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때'에 가깝습니다. 마음의 빛을 밝혀 환히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물은 물결이 일지 않으면 스스로 조용하고, 거울은 먼지가 끼지 않으면 저절로 밝다. 그러므로 굳이 마음을 맑게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흐린 것을 버리면 스스로 맑아질 것이다. 또한 굳이 즐거움을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괴로움을 버리면 저절로 즐거울 것이다.
水不波則自定,鑑不예則自明.
故心無可淸,去其混之者而淸自現.
樂不必尋,去其苦之者而樂自存.(채근담 151)
사람의 마음이 본래 맑고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은 여명이 밝아오기 전 새벽 하늘을 바라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구태여 마음을 깨끗이 하려고 애쓸 것도 없이 본래 맑은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지옥철 같은 지하철을 타고 본격적인 삶의 현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음은 흐려지고 괴로움이 찾아듭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남들보다 몸을 한 걸음 더 높이 세워야 할 것입니다.
몸을 한 걸음 높이 세우지 않는다면 마치 먼지 속에서 옷을 털고 흙탕물에 발을 씻는 것과 같으니 어찌 인생을 깨칠 수 있으리요! 세상을 한 걸음 뒤져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마치 불나방이 촛불로 날아들고 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는 것과 같으니 어찌 생활이 안락할 수 있으리요!
立身,不高一步位,如塵裡振衣 泥中濯足,如何超達.
處世,不退一步處,如飛蛾投燈 저羊觸藩,如何安樂. (채근담 43)
세상 사람들보다 한 걸음 높은 곳에 뜻을 두되, 그러나 한 걸음 더 뒤져서 가는 여유가 없으면 세상을 살기 어렵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나 봅니다.
고전이 대개 그러하지만 채근담의 문장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읽기가 쉬워 한달음에 읽어치울 수 있지만 그런들 무엇하겠습니까. 한 번 읽어보고 덮어 둘 책이 아닙니다. 새벽에 일어나 하나씩 마음에 새겨가며 읽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읽을 때 마다 그 느낌이 다릅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고 나이가 듦에 따라 또 다르게 느껴집니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가정을 이루어 살다보니 이런 구절도 눈에 들어옵니다.
집안 식구가 잘못을 저지르면 몹시 성내지도 말고 가볍게 내버려 두지도 말라. 그 일을 말하기 어렵거든 다른 일을 빌어서 넌지시 일깨워 주고, 오늘 깨닫지 못하면 내일 다시 일깨워 주되, 봄바람이 얼어 붙은 것을 녹이듯 하고 온화한 기운이 얼음을 녹이듯 하라. 이것이 곧 가정을 다스리는 법도니라.
家人有過,不宜暴怒,不宜輕棄.
此事難言,借他事隱諷之.今日不悟,俟來日再警之.
如春風解凍,如和氣消氷,재是家庭的型範. (채근담 96)
책을 읽고 글을 씀에 어떻게 읽고 쓰는 것이 좋은지를 알려주는 문장도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독서를 잘하는 사람은 신이 나서 손발이 춤추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형식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사물을 잘 관찰하는 사람은 마음과 정신이 융합되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사물의 외형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채근담 217)
문장이 극치에 이르면 유난히 기이하게 보이지 않고 다만 알맞을 뿐이다. 인품이 극치에 이르면 다만 본래의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채근담 102)
읽을 땐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야 하며, 기이하고 화려하지 않고 다만 평범한 문장이지만 생각과 감정을 알맞게 표현한 것이야말로 문장의 극치라는 뜻입니다.
채근담을 읽으며 책 읽는 마음가짐에 조금 변화가 있었습니다.
비슷한 글, 비슷한 내용, 때로는 (오만하게도) 다 아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이런 글을 읽고 또 읽어야 할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런 글을 반복하여 읽으면서 어느 순간 마음이 닮아감을 느낍니다. 따라서 책을 읽는 이유 중 지식을 얻고자 함도 있겠지만, 이와 같이 내 마음이 그와 같기를 바라기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고전을 읽고 또 읽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編義自見)이라는 말도 있으니, 마음이 그와 같아지고 닮아간다는 뜻에서 독서백편심자화(讀書百編心自化) 또는 독서백편심자초(讀書百編心自肖)라 함은 또 어떨까요?
채근담 [菜根譚]
중국 명(明)나라 말 홍응명(洪應明;自誠)이 지은 책. 책의 이름은 송(宋)나라 왕신민(汪信民)의 소학(小學) 가운데 <사람이 항상 채근(菜根)을 씹을 수 있다면 백사(百事)를 이룰 수 있다(人常能咬菜根卽百事可成)>에서 따온 것이다.
명나라 말 유교적인 교양을 기초로 도교·불교를 조화시킨 재치 있는 문장으로 구성된 책들이 유행하였는데 이 책도 그 가운데 하나로 전집(前集) 222조, 후집(後集) 135조, 총 357조의 청담(淸談)으로 이루어졌다. 전집은 주로 사람끼리 교감하는 도(道)를 논하면서 처세훈(處世訓)과 같은 도덕적 훈계의 말을, 후집은 자연의 정취와 산 속에 은거하는 즐거움을 논하면서 인생의 철리(哲理)와 우주의 이치에 대한 것을 기록하였다. 대부분이 단문이지만 사람의 도리에 대해서 참으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집과 후집으로 나뉘어 있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섭세편, 도심편, 자연편 그리고 수성편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 인생의 철리와 우주의 이치는 유교·불교·도교를 통한 진리로 이것을 어록 형식에 따라 대구(對句)를 사용, 문학적으로 표현하여 구약성서의 지혜서나 선시(禪詩)를 읽는 듯한 깔끔한 깨달음을 후세사람들에게까지 준다.
부록

댓글 3
채근담중에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를 만나면 노트에 옮겨 두었다가 다시 한번 두런두런 읽어서 외울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채근담이 내 것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그래 왔으니까요. 오랜동안 가려 뽑은 글을 읽고 또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 지는 책. 바로 채근담입니다. 채근담의 가장 멋진 선언 [♧ 참된 사람은 오직 평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