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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9-07-14 20:24:29, Hit : 6720, Vote :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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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아이로 키우기
목표는 실현 가능한 것이라야 한다

흔히 시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아이에게 ‘다음 시험 때는 10점 정도 올려보자’ 또는 ‘다음에는 100점 받자’와 같이 점수를 기준으로 목표를 세운다. 이런 목표 설정을 결과 중심 목표 설정이라 한다. 그러나 이미 수없이 언급했듯이 결과는 결과일 뿐이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다행히 100점을 받을 수도 있고,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노력했지만 아쉽다. 다음에는 조금 더 노력해서 100점 받아보자’라고 또 할 것인가?

목표는 실현 가능한 것만 삼아야 한다. 또한 결과 중심이 아니라 과정 중심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 오늘 하기로 한 것만큼은 꼭 완수하기, 주간계획표를 세우고 반드시 실천하기. 이런 것이 과정 중심의 목표다. 시험 점수는, 그렇게 실천한 후에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결과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바꿀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  뿐이라는 걸, 아이는 배워야 한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충분히 즐기고, 나쁘면 나쁜 대로 조금은 아쉬워하며 다시 전략을 세우고 실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위인전, 잘못 읽으면 독이 된다

위인전을 아이에게 읽히는 이유를 물으면 대개 “위인의 삶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게 하려고…….”라고 답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러면 대개 “천재죠”라고 말한다. 천재에게 무얼 배울 것인가? 배울 게 없다. 오로지 부러울 뿐이다. 아이들도 대개 이런 식으로 위인전을 읽는다. 수많은 위인전을 읽고서 나중에 머릿속에 남는 것은 ‘대단한 사람이야.’ ‘훌륭한 사람이야.’ 정도다. 위인의 삶을 닮으려는 아이는 생각보다 적다.

엉뚱하게도 아이들은 위인전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만들어 간다. 위인전 속에 등장하는 위대한 사람들과 나를 가르기 시작한다. 세상을 이끄는 위대한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 이렇게 나누어 보기 시작한다. 은연중에 노력의 한계를 정해버린다. 반 친구들을 볼 때도, ‘쟤는 머리가 똑똑해’ ‘쟤는 좀 멍청해’ ‘쟤는 영어실력이 굉장히 뛰어나’ ‘나는 수학에 소질이 없나봐’와 같이 사람의 특성을 정해버린다. 이렇게 형성된 관념이 때론 평생 가기도 한다. ‘나는 창의성이 좀 떨어져’ 이렇게 스스로를 규정하고서는 평생 이런 생각에 갇혀 산다. 회사 생활을 하며 이런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누군가 일을 시키면 잘하는데,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은 대개 회사 내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붙인 딱지를 떼지 않는 한 평생을 ‘창의성 없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

몇 번의 경험이나 위인전 등을 읽으며 이렇게 형성된 생각은 앞에서 살펴본 ‘학습된 무기력’과 많이 닮았다. 스스로 노력의 한계에 선을 그어버리는 것, 실패를 했을 때 그 원인을 자신의 머리나 타고난 재능 탓으로 돌리는 것, 평가목표 성향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사람의 능력과 지능에 대한 고정된 시각은 결국 평가목표 성향을 강화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아이로 키우기

이렇듯 사람마다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것도 ‘습관’이다.
“엄마는 ‘만날’ 잔소리만 해”라는 아이와 “‘방을 안 치우면’ 꼭 잔소리구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큰 차이가 있다. “난 역시 수학을 못해”라는 아이와 “오늘은 문제가 잘 안 풀리네.”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다르다. 전자는 비관주의적 생각이고 후자는 낙관주의적 시각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엄마의 언어습관이 결정적이다. “넌 왜 ‘만날’ 그 모양이니?” “도대체 몇 번이야? 왜 그렇게 ‘만날’ 엄마 속을 썩이는 거야?” 이런 언어습관은 불행의 원인을 영속적인 원인에 두는 방식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을 심리학에서는 비관주의라고 부른다. 반면 불행의 원인을 일시적인 원인으로 돌리는 경향을 낙관주의라고 부른다. “난 수학을 못해”가 아니라 “오늘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네. 쉬었다 해야지” “수학은 노력을 더 해야겠어”와 같은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도전하고 노력할 수 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지금까지 아이의 공부성향을 학습목표와 평가목표로 크게 나누어, 평가목표가 아닌 학습목표 성향으로 이끌자고 했던 것도 결국 학습목표 성향의 아이가 긍정적이고 적극적 성향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학습목표 성향은 자연스레 낙관주의로 이끌고, 평가목표 성향은 은연중에 비관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수많은 위기와 실패 상황의 연속이다. 그 순간 우리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가? 아쉽게도 그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미칠 수 없다. 긍정적이고 적극적 선택을 하느냐, 부정적이고 비관적 선택을 하느냐, 그 선택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우리의 언어습관과 칭찬습관을 바꾸는 것뿐이다. 지금 우리의 말 한마디, 칭찬 한 마디가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다.

공부를, 평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즐기게 하자! 평가목표가 아닌 학습목표 성향의 아이로 만들어 주자. 그리하여 비관주의자가 아닌 낙관주의자로, 행복하고 적극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자.



제1부 ‘성공하는 아이로 키우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제2부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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