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06월18일 / 540건

     요즘 읽고 있는 책

     최근 11월25일 / 31건

     최근 08월07일 / 7건

     최근 06월17일 / 101건

     최근 05월24일 / 53건

     최근 01월23일 / 133건

     최근 07월02일 / 190건

     최근 06월04일 / 43건

     최근 02월09일 / 158건

     최근 02월09일 / 158건
               개발
               기타

 

 


0
 540   54   1
  View Articles

Name  
   손병목 (2006-07-03 08:34:43, Hit : 6363, Vote : 944)
Homepage  
   http://www.itmembers.net
Subject  
   [맹자10] 전쟁통에 왜 하필 인성론인가?
덥고 습했던 지난 한 주, 어떻게 보내셨나요?

늘 월요일은 새롭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이은 또 하나의 월요일에 불과하다면, 삶이 따분하다는 증거입니다.
낯설음이 철학의 시작입니다. 반복되는 날들에서 낯설음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맹자의 왕도정치를 중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주에는 성선설과 사회분업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금요일까지 하면 <맹자> 연재는 끝날 듯합니다.


전쟁통에 왜 하필 인성론인가?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은 학교에서 웬만큼 배워서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하고,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다는 그런 ‘사실’이 과연 중요할까요? “그 아이스크림 정말 맛있더라.”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은 경험상 그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도 좀 주라~’라고 하는데 진의가 있듯이, 사실 그 자체보다는 거기에 담긴 속뜻을 간파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성선설은 맹자의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당시에 맹자는 성선설을 주요 무기로 다른 사상가들과 사상 투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온 나라가 전쟁 중이었던 전국시대에 왜 하필 인성론을 들고 나왔을까요? 인성론은 매우 사변적이며 관념적인 논의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착하면 어떻고 악하면 어떠하며,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면 또 어떠하겠습니까? 그것이 무한경쟁의 전국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물론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맹자가 아무 생각도 없이 전국시대에 마치 뜬구름 잡는 듯한 인성론을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맹자의 인성론은 처음부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맹자의 정치철학적 입장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론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전국시대에 여러 사상가들이 군주들 앞에서 유세를 했습니다. 그럴 때 자신이 주장하는 정치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이 이러하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식으로 유세를 한 거죠. 정치적 입장의 근거를 인간의 본성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법치를 주장한 법가는 공권력의 중요성을 설파했는데,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이 탐욕스럽고 늘 갈등에 빠져있다고 설명한 겁니다. 맹자는 그 반대였죠.

지금부터 맹자의 성선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그와 논쟁을 벌였던 고자|告子|와의 일대 논쟁을 중계하며 간간이 해설을 덧붙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맹자의 성선설과 대비하여 순자의 성악설을 비교합니다. 그러나 맹자 당시에는 순자가 없었습니다. 맹자는 순자의 성악설을 염두에 두고 성선설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순자의 성악설은 맹자의 성선설과 싸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순자의 성악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맹자와의 비교가 꼭 필요합니다. 반면 순자의 선배인 맹자는 한 번도 순자의 성악설과 대비하여 자신의 이론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주요 상대는 고자였습니다.

고자가 누구인지 거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잊혀진 사상가입니다. 고자 자신의 텍스트가 지금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맹자와 그의 제자들이 엮은 <맹자> 속에서 맹자와 고자의 대화 장면을 통해 고자 사상의 단편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 대화는 늘 맹자의 결론으로 끝을 맺습니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분명 그 뒤에 고자의 반론이 있음직한데도 맹자의 말로 끝맺음으로써 맹자의 승리를 암시합니다. 책은 비록 그렇게 끝이 나지만, 저는 그 뒤에 이어지는 맹자의 반론을 추가해보겠습니다. 그래서 과연 맹자의 성선설이 옳은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내일 계속...)

* 내일부터의 연재 내용은 따로 보내드리지 않습니다. 주제가 바뀌면 보내드리되, 동일한 주제의 연재는 매주 한 차례 정도만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 박스를 비우는 번거러움을 덜어드리기 위함입니다^^

Name
Memo  


Password


댓글 자동 등록 방지용 숫자

Prev
   [맹자11] 맹자 vs. 고자 ROUND 3 [2]

손병목
Next
   [맹자09] 우물에 빠진 아이

손병목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Zetyx